30여 년 동안 배우로 살았던 이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주인을 잃은 블로그에는 언젠가 그가 써놓은 글귀만이 홀로 남았다.
지난 9일 월세로 살던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배우 우봉식(43)의 이야기다.
블로그에서 그는 스스로를 '우배우'라고 칭했다. 취미는 승마와 권투이고 거주지는 서울.
우봉식 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프로필에 기재된 것이 전부다. 그의 블로그엔 오로지 '배우'인 자신의 필모그래피만이 가득하기 때문.
CF까지 하면 그가 배우로서 출연한 작품들은 불과 11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뿐인 단역부터 이름조차 없는 파출소 순경 역까지. 하지만 그에겐 모두 블로그에 기록해 둘 정도로 소중한 순간이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따로 나눈 카테고리 앞에는 빠짐없이 '나의'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비록 주연의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들은 '나의' 영화이고, '나의' 드라마이고, '나의' 연극이었던 셈이다.
부고를 접한 지인들과 네티즌들은 유일하게 고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블로그에 찾아와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 후배는 11일 안부게시판에 "설마했다"면서 "학교 다닐 때 그 누구보다 엄청난 열정과 재능으로 학교에서도 인정한 배우이자 놀이꾼, 광대였다"고 고인과 함께한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이어 "어디에선가 묵직한 연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리라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라고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참 멍해진다. 안타깝고, 부디 편안히 쉬시길. 선배는 참 아름다운 배우이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지인 김모씨도 "봉식아, 죽어서야 검색 1~4위에 오르는구나. 이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좋은 배우가 되기 바란다"고 애끓는 심정을 적었다.
2001년 촬영한 하나뿐인 CF에서 여전히 그는 살아 숨쉬고 있다. 고인은 살아생전 큰 관심도, 스포트라이트도 받아본 적 없었지만 이제 13년 전 찍었던 CF까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어느 더운 여름날, 맛있게 밥을 비벼먹는 고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