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에 무병을 앓기 시작해 열일곱에 외할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는 김금화의 삶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이고 치유의 이야기다.
스무 살 때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한 그녀는 인천과 이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5년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석관동으로 이사올 무렵은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미신타파 바람이 굉장히 거셀 때였어요. 만수대탁굿을 올리는데 주민들 신고가 빗발치는 거예요. 여러 번 파출소에 끌려가서 다시는 굿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집에 오면 또 했죠."
"젊은 사람들의 경우 무속에 대해 무서워하고 멀리 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이게 다 우리 조상의 얼이고,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활 속에서 해오던 것이니 편안하게 다가가자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만신이 말하는 책을 낸 이유다.
"1980년 10월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황해도 대동굿 공연하는 김금화 만신을 처음 만났다. 굿당에서 황해도굿을 보기는 했지만 이틀내리 쉴 짬도 없이 제대로 하는 굿은 처음이었다. 김금화 만신의 굿은 한 마디로 황홀했다."(황루시 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영화를 찍으면서 선생이 젯상에 밥을 퍼 담아 올리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큰 무당의 밥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굿의 화려한 기예 이전에 존재하는, 신을 모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성스러운 행동이었다. 쌀 한 톨에 말 한 마디씩 들어 있다는 표현은 또 얼마나 문학적인지…."(박찬경 '만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