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 파멸… 플라스틱의 두 얼굴

[신간] 유혹하는 플라스틱/ 로리 에시그/ 이른아침

"일자리가 필요해? 플라스틱 수술(plastic surgery·성형수술)로 코를 좀 높여봐! 애인이 없다고? 가슴을 좀 키워봐! 돈이 문제라고? 플라스틱 머니(plastic money·신용카드)가 있잖아!"

플라스틱은 현대인의 일상의 지배자다. 미국 한 대학의 교수인 저자의 이 같은 지적은 옳다.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침대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시계 알람을 듣고 깨어나, 변기 휴지통 칫솔 치약 면도기 샤워기 등 온통 플라스틱인 화장실에서 치장을 마치고,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음식을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아침을 먹는다. 이어 플라스틱 안경을 쓰고, 플라스틱 지갑을 챙긴 다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차를 타고, 플라스틱으로 된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출근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영향력을 키워오던 플라스틱은 급기야 사람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두 가지 요소를 좌지우지하는 힘까지 갖게 됐다. 일과 사랑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안정적 일자리와 영원한 사랑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플라스틱(plastic), 즉 플라스틱 수술(plastic surgery)과 플라스틱 머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플라스틱은 우리에게 완벽한 미래를 약속한다. 플라스틱만 있으면 우리는 완벽한 몸매, 완벽한 외모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완벽한 외모는 완벽한 배우자와 완벽한 직장을 보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모두를 약속하는 것이 플라스틱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 또한 플라스틱이다."(21쪽)

요즘 어디를 가든 성형광고와 대출광고가 거리에 넘쳐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런 플라스틱 제국과 닮은꼴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윤 추구만을 탐하는 산업이 된 성형수술과 본래부터 이기적인 은행이 플라스틱이라는 공통분모로 한 데 모이자 마침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주택 담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매달리고 이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 치명적인 육체 담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도 매달리게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짜 원인은 바로 이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미국 경제를 몰아 가는 힘은 소비를 통한 완벽의 추구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는 소비에 의존한다 그 소비는 TV, 잡지, 그리고 여타 문화적 각본 등 여러 힘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을 타깃으로 삼았다. 주택을 처음 소유하는 유색인종들 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자들이 약 80%가 흑인이나 라틴계였다. "(78~79쪽)

그렇다면 이 공고한 플라스틱 제국에서 살아남을 생존법은 무엇인가.

"미용수술 산업에 규제가 가해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규제 없는 은행은 더 이상 안 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건, 고이율의 학자금 대출이건, 신용카드로 지불하는 유방 성형이건, 더 나은 미래라는 꿈을 위해 부채를 안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무한한 기회가 열린 완벽한 꿈의 전경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기회가 골고루 배분되는 나라, 개개인 모두의 삶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완벽에의 추구를 멈출 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좋은 그런 사회를 요구할 때, 우리가 사는 나라는 플라스틱의 제국이 아니라 사람 사는 실제 세계로서의 국가가 될 수 있다."(236~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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