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승리의 일등 공신은 주포 레오였다. 무려 66.22%의 공격 성공률로 양 팀 최다 49점을 쏟아부었다. 혼자서도 상대 쌍포 아가메즈(29점)-문성민(18점)과 화력 대결을 이겨낸 대활약이었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그러나 레오의 활약에 대해 엄지를 치켜세우면서도 이날 경기 MVP는 다른 사람을 꼽았다. 경기 후 축승연에서 신 감독은 취재진에게 "오늘 MVP는 고준용"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도 신 감독은 "오늘은 고준용이 날았다"면서 동석한 본인에게 직접 "그렇게만 해주라"고 칭찬했다.
고준용(25, 193cm)은 이날 4점, 2블로킹 공격 성공률 33.33%을 기록했다. 그러나 알토란 득점이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상대 주포 문성민의 공격을 블로킹하며 기를 꺾었고, 마지막 4세트 막판 두 번의 다이렉트 킬로 경기를 끝냈다. 경기의 시작과 끝을 고준용이 장식한 셈이었다. 서브 리시브도 양 팀 최다 26개 성공, 디그도 7개를 걷어올렸다.
▲강심장 위해 번지 점프, 헌팅도 불사
사실 신 감독은 고준용을 2011-2012시즌 2라운드 1순위로 입단할 때부터 혹독하게 채찍질을 해왔다. '배구 도사' 석진욱(현 러시앤캐시 코치)의 뒤를 이을 레프트로 키워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워낙 소심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신 감독은 "한 마디로 새가슴이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난 2012-2013시즌을 앞두고는 고준용 강심장 만들기 특별 프로젝트까지 진행됐다. 간을 키우기 위해 번지 점프를 시킨 것. 이에 화들짝 놀란 고준용은 "더 담대하게 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한 끝에 겨우 하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 고준용도 구르는 재주가 있었다. 또 다른 미션은 의외로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시내 한복판에서 이른바 '길거리 헌팅'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워낙 숙맥이라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적잖았고 선수단 사이에서 내기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고준용은 거짓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여성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도 고준용은 백업으로만 뛰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석진욱의 은퇴와 '월드 리베로' 여오현의 현대캐피탈 이적으로 삼성화재는 수비진 불안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석진욱 공백, 류윤식 이적도 이젠 OK!"
고민도 있었다. 시즌 도중 레프트 자원인 류윤식이 대한항공으로부터 이적해온 것. 입단 동기지만 경쟁자인 류윤식의 합류로 고준용은 마음 고생이 적잖았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류윤식이 2월 중순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면서 고준용이 붙박이 주전으로 나섰다.
고준용은 정규리그 우승 확정 뒤 인터뷰에서 "시즌 시작 전에 석진욱 형 나가고 삼성화재가 안 될 거다, 고준용은 안 될 거다 말을 들었다"면서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훈련했고, 내가 뛰어도 삼성화재가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훈련만 믿고 했다"고 그동안 심신의 고생을 털어놨다.
동기와 선의의 경쟁에 대해서는 "류윤식이 합류하고 처음 현대캐피탈전에서 잘 해서 그날 사실 조금 의기소침했다"면서 "그러나 이후 우리카드와 경기에서는 내가 잘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식이가 오면서 심적으로는 더 편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흔들리면 대체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옆에 있던 주장 고희진이 "왜 없어? 많다"고 눙을 치기도 했다.) 부담이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이유다.
아직까지도 고준용은 경기 중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신 감독은 "경기 중에도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꿔달라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 시즌 만에 새가슴 고준용은 분명 달라졌다. 과연 고준용의 각성이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