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밤 KBS 2TV 드라마시티 ''내일 또 내 일'' 방영 후, 이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의 감동을 기억하는 네티즌들이 많은 시청 소감을 남겼다.
주를 이루는 소감은 ''평소 잘 볼 수 없는 드라마였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내일 또 내 일''은 전신마비 환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 아니면 불륜으로 소재가 한정된 천편일률적인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비 충당을 위해 주로 쓰이는 화려한 PPL 소품조차 등장하지 않으니 시청자들이 생경하게 느낄 만도 하다.
미디어가 주는 감각의 홍수 속에서 이젠 낯선 프로그램이 돼 버린 TV 단막극. 하지만 단막극은 드라마의 발전과 더불어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란 게 방송가 안팎의 시각이다.
단막극, 드라마 인큐베이터 역할과 동시에 다양한 장르 실험의 장 제공
방송계 인사들은 단막극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단막극이 모든 드라마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꼽는다. 단막극을 통해 연출자와 작가가 극작술을 배우기도 하고 능력을 검증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MBC ''''베스트극장'''' 최원석 CP는 "보통 PD들은 단막극을 통해 기초를 탄탄히 다진 후 주간 단막극, 미니시리즈, 연속극 연출 순으로 호흡을 늘려가며 능력을 쌓는다"고 말했다.
KBS의 경우 ''드라마시티''를 돌아가며 연출하는 11명의 PD 가운데 상당수가 이 프로그램를 통해 입봉했다.
이 때문에 일선의 PD들은 ''베스트극장''을 방송하는 MBC와 ''드라마시티'' ''TV문학관''을 방송하는 KBS와 달리 이렇다할 단막극이 편성에서 사라진 SBS의 경우 드라마 PD의 성장이 다소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PD와 작가 뿐 아니라 연기자 역시 단막극을 통해 능력을 키워 나간다. 최 CP는 "과거에는 배우 역시 단막극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펼쳐 미니시리즈 등에 캐스팅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스타 캐스팅이 일반화돼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연기자가 연속극에 등장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필요성 중 하나는 단막극이 ''다양한 드라마 실험의 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PD가 지난해 연출한 ''드라마시티-조 선생, 소년원 가다'' 역시 소년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제학생과 문제선생의 상호 갈등과 이해를 그린 작품으로 여느 드라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MBC는 ''베스트극장''을 통해 다양한 드라마 장르의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호평을 받았던 4부작 ''태릉선수촌''은 스포츠를 통한 성장 드라마였고 ''문신''은 웰메이드 스릴러를 표방했다. 다음달 4일 방송 예정인 ''통정''은 단막극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극 장르다. 최원석 CP는 "이 같은 작업이 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성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논리에 밀려 편성 휘둘려..SBS는 단막극 없애
단막극의 필요성은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볼 때 미니시리즈나 연속극보다 비용대비 성과가 떨어져 부침이 심했던 게 사실이다.
연속극의 경우 첫 방영 후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면 충성도 있는 시청자들이 확보되지만 매번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단막극의 경우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다. 이 같은 불확실성이 단막극의 편성 홀대를 지속시켜 왔다.
KBS ''드라마시티''의 경우 화요일 밤, 일요일 오전, 토요일 밤 등 개편이 있을 때마다 시간대를 옮긴 끝에 현재 토요일 밤 11시 5분에 자리를 잡았다. 채널마저도 2TV와 1TV를 오갔다.
MBC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초 봄 개편에서 편성에 휘둘리자 아예 ''베스트극장''은 4월부터 10월까지 방송을 중단했었다. 현재 토요일 밤 11시 45분에 방송되고 있지만 이 역시 방송가에서 말하는 드라마 시간대, 오후 8시 20분 ~ 밤 11시 05분은 벗어난 시간이다.
SBS는 2004년 초 ''오픈드라마 남과 여'' 종영과 함께 단막극의 편성을 아예 배제시켰다. ''오픈드라마 남과 여''는 다른 방송사의 단막극과는 달리 멜러 형식만을 사용, 시청률을 염두에 둔 선택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이마저 SBS는 중단했다.
단막극 질 제고 위해 제작비 현실화, 예산의 탄력적 운용 문제 등 해결돼야
MBC 최원석 CP의 경우 제작비 자체보다는 예산 운용의 경직성을 문제로 들었다. 최 CP는 "제작비는 항상 부족하지만 그보다 예산 운용 획일성이 더 문제"라며 ''''드라마 마다 소요되는 예산이 다른데 탄력 없이 같은 예산만 책정되다보니 고만고만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제작 후 돈이 남을 때는 회사에 반납하고 반대로 돈이 많이 드는 경우 예산을 더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예산 활용에 있어 탄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드라마 시청, 시청자들의 당연한 권리
이진서 PD는 "지상파를 통해 다양한 드라마를 보는 것은 시청자들의 권리"라고 말한다. 단막극은 PD와 작가, 방송사들의 새로운 시도 차원을 넘어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에게 제공해야할 마땅한 서비스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PD들은 시청자들 역시 단막극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한다. 시장 논리로 점철된 지상파 드라마 속에서 시청률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단막극의 존재를 반갑게 받아들여달라는 부탁이다.
다행히 ''베스트극장''의 재개 등 호재가 맞물려 단막극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올해, 단막극의 진화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