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사건 진술서도 잇단 조작 '의혹'

임모씨 "허위 대필" 주장...서모씨 진술서도 정면 반박돼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해 중국의 공문서뿐 아니라 국내서 작성된 증인들의 진술서도 잇달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중국 문서 위조 의혹에 대해 "위조된 사실을 몰랐다"는 기존 해명과 달리 국정원이 국내서 이뤄진 증인 진술서 작성 과정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나오면서 '의도된 조작'일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61)가 국정원 측 증인이었던 임모씨(49)의 진술서를 대신 썼다는 주장이 나왔을 뿐 아니라 '유우성씨를 북한에서 봤다'는 서모씨 진술서 내용 역시 사실이 다르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원에 제출된 임씨와 서씨 이름으로 된 진술서의 공통된 점은 유씨의 간첩혐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둘다 신빙성을 크게 의심받고 있다.

우선 임씨의 진술서는 검찰과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국) 기록이 진짜라는 취지로 작성돼 있다. 임씨는 진술서에 유씨 변호인단이 제출한 '출-입-입-입' 기록이 전산 오류('입'이 두번 추가)라는 삼합변방검사참(세관)이 밝힌 정황설명서를 반박했다.

그는 '출입경 기록은 오류나 누락은 발생할수 있어도 출입국 상황이 없는 기록이 생성될수는 없다', '을종(단수 통행증)도 유효기간 내 여러번 북한을 다녀올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임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을종 통행증은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전산 기록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는 정도만 말했다"고 했다. 그는 또 "김 씨가 중국어로 진술서를 써 내려간 뒤 지장을 찍어 달라고 해서 찍어줬을 뿐"이라며 진술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김씨의 소학교 제자였으며 김씨가 8년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찾아왔다고 했다. 당시 김씨는 다른 일행 3명에 대해 임씨에게 검찰 관계자라고 소개했지만 이에 대해 검찰은 정면 반박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씨에 대해선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정원이 신변을 확인해 준 것"이라며 "검찰이 김씨의 존재를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신분을 검찰로 속이고 진술서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임씨가 그 내용을 자필로 작성했다. 진술서 진위여부는 필적감정으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이 유씨의 혐의를 확인해줄수 있는 핵심 증인과 뒤늦게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점은 비정상적인 수사과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씨를 북한에서 봤다는 서씨 진술서도 또다시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탈북자인 서씨 역시 진술서를 통해 ‘지난 2007년 회령시에서 유씨가 위덕만이라는 친구와 함께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봤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에 대해 "위덕만은 내 친구가 맞다"고 했지만 "서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씨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말이 된다.

문제는 서씨가 유씨와 함께 목격했다던 위씨가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 산둥성 엔타이시에서 식당일을 하느라고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씨의 진술서는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

현재 국정원 외에 서씨의 존재를 명확히 알고 있는 데는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실제로 본인이 진술서를 작성한 것인지, 임씨처럼 대필이 된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 핵심 증인, 진술서만 있고 재판엔 안나와

국정원이 확보한 진술서가 잇달아 거짓이라는 증언이 나오면서, 국정원이 조직적인 증거 조작을 벌였다는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

협력자를 통해 입수한 출입경 기록 등 중국 공문서와 달리 진술서들은 국정원에서 증인들을 상대로 직접 받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진술서는 공교롭게도 작성자가 법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검찰은 사실상 최후의 증인이었던 임씨에 대해 재판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공'을 들였지만 끝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열린 공판에서 "임모 증인은 변호인측 증거를 탄핵하는 진술을 할 예정이다"며 공언했지만, 임씨는 자신이 증인이었던 사실도 몰랐다고 했다.

서씨 역시 진술서만 남긴 채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지는 않았다. 서씨가 만약 재판정에 나왔다면 위씨와 진실을 놓고 다퉜을 공산이 컸다.

유씨 변호인단은 서씨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씨의 진술때문에 검찰과 국정원이 서씨를 증인으로 부르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씨는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문서 위조 뿐아니라 증인들의 진술서 작성에도 국정원이 어떤식으로, 얼마나 개입했는지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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