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국정원 관련 사건에 부담을 느껴 사실관계 감추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14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모 호텔 객실 바닥에서 피를 흘린 채 발견됐다.
객실 벽면에는 김 씨가 피로 쓴 것으로 보이는 '국정원'이라는 글씨가 발견됐다.
김 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긴 경찰은 약 1시간 뒤인 오후 7시 20분쯤 김 씨가 검찰이 '자살 우려가 있다'며 실종 신고한 증거 조작 사건 관련 중요 참고인인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자살 기도 현장 채증과 감식 작업 지시는 그로부터 2시간이나 지난 오후 9시 20분쯤에야 내려졌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주요 관련자가 자살을 기도한 중대 사안임에도 경찰이 2시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밤 10시 15분쯤 약 30분간 채증 작업을 마친 경찰은 "객실을 치워도 되느냐"는 호텔 관계자 물음에 "조사가 다 끝났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해 이후 객실 청소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중요 사건 관련 피의자나 참고인이 자살을 시도하면 해당 현장을 보존하고 일반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상식적 조치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으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34) 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민변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서 현장을 보존하지 않은 것은 수사의 기초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김 씨가 국정원 요구로 중국에서 '가짜 문서'를 만들었는지가 증거 조작 의혹의 핵심인 만큼 자살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국정원' 혈서 존재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경찰은 전날 사건 현장에서 사진 촬영까지 했으면서 사건이 알려진 6일 오후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히 처음에는 "채증은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가 '현장 훼손' 지적이 빗발치자 그제야 "채증 작업을 했고 '국정원'이라고 쓰인 벽면 사진도 찍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현장에서 유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김 씨 아들이 유서를 검찰에 제출하자 뒤늦게 "유서를 가족에게 전달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증거 조작 의혹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궁지에 몰린 국정원 처지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경찰에 모종의 압력을 가했거나 경찰이 알아서 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