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처방을 담은 만큼 약효는 즉시 나타났다.
주택시장의 회복세가 뚜렷해졌고, 월세 세입자나 상가 임차인 보호라는 정책 목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일시에 많은 성과를 보겠다는 과욕 탓인지 세부 시행과제에선 적잖은 부작용이 지적되면서 시장의 혼란을 낳고있다.
◈ 1주일만에 개보수한 전월세 대책
정부는 5일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의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월세 세입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 2.26대책이 전월세 시장에 예기치 못한 파장을 낳자 1주일만에 황급히 땜질에 나선 것이다.
시장이 출렁거린 핵심적인 요인은, 월세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집주인에 대한 세금 징수가 부각되면서 결과적으로 세입자가 오히려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다.
정부는 세입자에게 한달치 월세를 환급해주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선 집주인으로부터 제대로 세금을 거둬야 한다.
그러나 여태껏 내지않던 집주인은 이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편법을 동원할 것이고, 만약 이게 여의치 않다면 월세금을 올림으로써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가장 약자인 세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2주택 월세 소득 2천만원 이하의 소규모 임대사업자는 2년간 비과세하는 등의 완충장치를 추가하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예상밖의 세금폭탄에 놀란 집주인들이 이에 흔쾌히 응할지는 의문이다.
유예기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마냥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월세금 인상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려 할 공산이 크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세무조사나 임대료가 증가하는 부담감이 시장에 남아있어서 임차인과 임대인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보완책이 2주택 보유자의 전세 보증금에 대해서도 과세하기로 점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가뜩이나 부족한 전세의 품귀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고있다.
조세 정의 차원에서 임대 사업자에 대한 과세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왜 하필 이 시점에 거론함으로써 정책의 방향성을 헷갈리게 하는가 하는 비판이다.
◈ 상가권리금 양성화, 총론은 좋지만 각론은 미흡
2.26 전월세 대책에 하루 앞서 발표한 상가권리금 양성화 방안은 영세상인 보호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경우다.
권리금이 법적 실체를 인정받고 제도화하려면 먼저 권리금의 정의부터 명확히 내려져야 한다.
권리금은 영업권리금, 시설권리금, 바닥권리금으로 나뉘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임차인의 재산권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다.
법제화를 위해서는 유형과 성격별로 세분화된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법제화 이후에도 권리금이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표준계약서 작성이 필수적인데 정부의 안은 ‘권고 사항’에 그치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임차인간에 표준계약서 대신 권리금 지불각서만 작성해도 민법상으로는 보호된다.
그러나 권리금을 뜯기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서이며, 이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즉, 표준계약서 사용이 의무화되지 않는다면 그에 수반하는 보호장치들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 6월 지방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정부안에 앞서 관련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권리금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작성을 강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그냥 풀리는 것은 아니다.
권리금에 대한 표준계약서를 쓰는 순간 과세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예상되는 것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첫번째 부과 대상자에 대한 세제혜택 등의 대안이 뒤따르지 않으면 양성화 취지와는 반대현상이 생길 수 있다”면서 “그외에도 세분화된 정책 수립 등이 보완되지 않으면 현재로선 시장의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남 안에만 온기 맴도는 재건축 규제완화
전월세 대책이나 상가권리금 정책이 서민을 염두에 둔 정책이라면 지난달 19일 국토교통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는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강남부자)’ 정책을 연상케한다.
국토부는 당시 서민의 주택구입 장려책 등을 포함시키긴 했지만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나 재건축시 아파트 소형 의무비율 완화, 다주택자 분양권 제한 폐지 등의 조치를 쏟아냈다.
시장에선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 부동산을 띄우겠다는 확실한 신호”로 인식했고 실제로 강남 재건축 단지는 즉시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82㎡(이하 전용면적)의 경우 지난달 18일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10억 7500만원과 10억 9000만원에 매물로 나와있었다.
그런데 국토부 업무보고 직후인 지난달 20일에는 11억 1100만원과 11억원에 각각 1채와 2채가 팔려나갔고 지난 4일에는 13억 3000만원에 1채가 거래됐다.
문제는 강남 재건축 단지의 온기가 강남권 밖으로 확산될지 여부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강남 재건축→강남 일반 아파트→강북 아파트→수도권으로 이어져온 과거의 도식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 팀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주택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과거처럼 단기적으로 강북이나 수도권으로 크게 확산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2월 마지막 주의 서울 아파트 시세는 강남은 오름폭이 커진 반면 강북은 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례로 강남구 아파트 시세는 2월 첫째주에 전주대비 상승률이 0.11%에서 마지막 주에는 0.98%로 높아진 반면, 서대문구에선 같은 기간 상승률이 마이너스 0.02%에서 마이너스 0.04%로 오히려 하락했다.
그나마 강북지역에서 일부 가격 상승 움직임이 있는 것은 전세의 매매전환 수요에 따른 것으로 강남 재건축 효과와는 무관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국토부의 이번 업무보고 내용은 국회 통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금이 넉넉치않은 실수요자들이 섣불리 움직이기에는 불확실한 측면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