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기초생활수급자 수만명이 탈락하고 빈곤층 예산이 삭감된 마당에 이뤄진 조치여서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면도날 심사에 지난해 3만7천여명 탈락...수급자 10년만에 최저치
서울시 송파구 세 모녀 사망사건에서 시작돼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이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3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일제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전국 지자체와 함께 한 달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조사를 통해 빈곤층을 발굴하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잇따른 자살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긴급 처방인 셈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빈곤층 복지에는 박했다. 지난 1년간 기초생활수급자를 엄격하게 가려내면서 탈락자 수만명이 속출했고 저소득층 관련 예산은 대폭 깎였다.
박근혜 정권 출범 첫 해에만 기초생활수급자 3만7천여명이 새로 탈락했다. 최근 몇 년 간 급감세를 보이던 기초생활수급자수는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3년도 소득확인조사 집계 결과 3만7388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중단됐다.
2012년 말 139만4천여명이었던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1년만에 135만7천명대로 대폭 줄었다.
2005년부터 6년간 150만명대를 유지하던 기초생활수급자수는 2012년부터 130만명대로 떨어지면서 급기야 10년 만에 바닥을 찍었다.
경기 침체로 절대빈곤층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자는 대폭 감소하는 모순이 벌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탈락자 3만7천여명 중에는 본인 소득이 아닌 부양의무자 소득으로 인한 탈락자가 2만여명으로 훨씬 많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소득이 있으면 수급 자격을 잃게되는 상황에서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 정부는 오히려 발달된 전산망을 통해서 더 염격하게 수급자를 가려내는 실정이다.
◈ 자살사건 3일후 자격 강화 발표, 도 넘은 빈곤층 쥐어짜기 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부정 수급자 가리기에 집중했던 현 정부의 행태는 그간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CBS 노컷뉴스 기획 '위기의 빈곤복지')
지난해 9월 부산 금정구에서 50대 후반 남성이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자 취업한 딸에게 병원비 등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정부는 부산 사건 사흘 뒤 오히려 '부정수급관리 강화안'을 발표했다. 1년에 두차례 실시되는 조사와는 별도로 상시적으로 자격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정부가 이처럼 기초생활수급 자격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올해 10월부터 실시되는 맞춤형 급여 도입에 앞선 사전 정비 차원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한 복지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기초연금 등 각종 보편적 복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빈곤층 쥐어짜기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증세없는 복지의 그늘인 셈이다.
실제로 올해 빈곤층 관련 예산도 대폭 줄었다. 기초생활수급 예산(생계,주거, 교육급여)은 3조3,635억원으로 올해 집행된 3조3,078억원보다 557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 집행 예산보다 불과 1.6%증가한 것으로 자연증가분에도 한참 못미치는 것이다.
당초 복지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 예산으로 3조9천여억원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무려 6천여억원이 삭감됐다.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클린 복지'라는 이름의 캠패인을 벌이고 있는데 대체로 빈곤층 가려내기를 통한 예산 아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초연금 정부안이 조만간 발표되면 재원이 많이 들어갈텐데 그 전에 최대한 불유불급한 부분은 줄인다는 차원에서 클린복지 사업을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수급자들도 대거 탈락하는 마당에, 가족 중 한명이라도 부양능력이 있거나 까다로운 자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빈곤층들은 정부 복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반짝 조사 말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근본적 대책 내놔야
송파구 모녀를 비롯해 자살한 사람들은 대체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외에 '긴급복지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2~3개월 대책에 불과할 뿐더러 조건도 까다로워 혜택을 받기 어렵다.
한 사회복지사는 "긴급복지지원은 주소득자의 사망, 실직, 부상으로 소득이 완전히 없고 화재 등 천재지변을 당한 경우 등 특수한 경우에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며 "신청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복지부의 한 달 간 일제조사로 상황이 나아질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허선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 기초생활수급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상당수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자격이 안된다"며 "부양의무를 대폭 완화하는 등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특히 "올해 10월 맞춤형 급여 도입 일정에 맞춘다고 정부가 해야할 것을 미루고 있다. 최저생계비의 현실화, 부양의무자 제도 완화는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한다"며 "수급자를 탈락시키는데 중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굴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통합전산망(사통망)이 강화되면서 기계적 심사의 폐해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 담당 공무원 인력을 충원해 현장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은 "전산망을 통한 기계적 심사때문에 많은 빈곤층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한 달 간의 조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양의무 제도 완화 등 근본적인 요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