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목소리는 높이지만…속 끓는 오바마

산적한 외교 현안에 러시아 도움 필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이를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러시아의 명백한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국내외적 요구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지 W.부시 정권 시절 국무부 차관을 지낸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미국과 나토 회원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서야 하며 특히 미국은 러시아와의 양자 투자협정을 중단하는 등 독자 대응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적었다.

번스 교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 군사행동에 나선 데에는 서방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면서, 이 때문에 서방이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서 러시아가 치러야 할 '비용'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등 미국 내 강경파들도 러시아에 더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간 주요 국제현안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개입을 망설이는 '유약함'을 노출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부추겼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CNN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푸틴이나 그 비슷한 지도자를 위협할 때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또 시작이군' 하는 생각을 한다"며 "약하고 우유부단한 대통령이 (상대의) 공격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 제재나 군사적 행동 등 실질적인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를 '응징'하기에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당장 미국의 외교정책과 일반 여론이 '불개입'에 기울어져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끝내고 주요 국제문제에 덜 개입하는 대신 국내문제에 집중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정책에 찬성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중간선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 핵협상,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미국 앞에 산적한 외교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 러시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는 양국 관계 악화로 러시아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심해지면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폐기작업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대니얼 서워 교수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로부터의 보급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푸틴 정권에 대한 책 '취약한 제국'을 쓴 언론인 벤 주다는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 리시아, 이란에서 미국이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국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썼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역시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러한 점을 지목하면서 "푸틴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게이츠 전 장관은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 전쟁을 교훈 삼아 강제적인 경제적·정치적 수단을 동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각 단계에서 치밀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가 겉보기에는 유약해 보이지만 러시아와 섣불리 척을 지는 대신 적절한 수위에서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국립전쟁대학에서 국가안보전략을 가르치는 리처드 안드레스 교수는 러시아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 주요 사안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현실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옹호했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는 미국이 '힘의 한계'에 맞춰 러시아에 대해 현실적 정책을 취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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