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일번지공인 김찬경 대표의 말이다.
김 사장은 "반전세로 계약이 진행되던중에 엊그제 집주인이 전세로 돌리겠다며 잔금을 안받아 거래가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며 "정부의 임대차 선진화 대책 발표 이후 임대인들의 동요가 크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지난달 말 PB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테크 강의에서 월세 소득 과세와 관련해 쏟아지는 질문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 팀장은 "월세 임대인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할지, 버텨도 될지 고민이 많았다"며 "정부의 이번 대책이 월세입자 지원이 아니라 임대인 세원 포착이 목적인 것 같다며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 '좌불안석' 집주인…"월세를 전세로 돌리겠다", "집 팔겠다" 혼란
정부의 2·26 임대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전·월세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월세입자들은 소득공제 신청시 종전보다 많은 한달 치 월세를 돌려받게 돼 유리해진 반면 집주인들은 이로 인해 월세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세금폭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은행 PB센터에는 불안한 월세 소득자들의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그동안 임대소득세를 안내던 집주인 입장에서 2주택 이하 분리과세 등의 혜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월세 소득이 노출될 경우 임대사업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며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 재고해보겠다는 집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금융소득종합과세여서 과세의 사각지대였던 부동산으로 자산을 분산해왔는데 이번 대책으로 부자들의 고민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세무사 사무실에도 월세 소득자들의 문의가 급증했다. 미신고한 월세 소득이 세무당국에 적발될까봐 좌불안석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지난해 임대 소득세 신고기간이 올해 5월까지여서 지금이라도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는지 묻는 고객이 많다"며 "과거 미신고분에 대한 가산세 걱정 등으로 집주인들의 동요가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장 시장에서는 일부 월세를 전세로 돌리기도 한다.
월세 이자율이 연 5%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머리 아프게 임대 관리를 하면서 소득세까지 내면 남는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 마포와 용인에 아파트 월세를 놓고 있는 김모(67)씨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느니 용인 아파트를 처분하고 마포의 아파트는 전세로 돌리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김씨는 "월세 소득공제 신고를 놓고 세입자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겠느냐"며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속편하게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월세는 전세와 달리 임차인과 마찰이 많고 전세보다 이사도 잦아 복비, 집수리비 등 비용도 많이 드는데 세금까지 내면 한마디로 임대인의 '인건비'도 안나올 것 같다"며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임대사업의 매력이 사라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와 관련한 움직임이 명확해질 때까지 월세 계약을 미루려는 현상도 나타났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국세청이 과거의 확정일자 자료를 받아 조사에 들어가면서 과거 미납부한 세금까지 소급적용 하려는 것에 대해 반발이 심하다"며 "다수의 집주인들이 정부 대책 이후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계약을 보류해 월세 거래가 거의 중단됐다"고 전했다.
또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소득공제 여부를 놓고 집주인과 임차인의 분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계약기간에는 소득공제 신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월세를 깎아줬는데 추후 집주인과 사이가 틀어져 경정청구를 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전문가들 "임대사업 위축 우려…과세 속도조절 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일부 월세 물건이 전세로 전환될 경우 전세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다주택자들의 '숨통'을 틔워줬던 월세 소득에 대한 매력이 반감하면서 정부 의도와 달리 임대사업 자체가 위축되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장 집을 팔겠다는 임대인도 있다. 이남수 팀장은 "얼마 전 국세청으로부터 임대소득세 미신고로 적발돼 세금이 추징된 한 고객이 집을 팔고 현금으로 굴려달라며 은행을 찾아왔다"며 "여유 계층이 집을 안사면 궁극적으로 전·월세 물량이 감소해 민간 임대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등 각종 공과금 부담이 커지고 연간 임대소득이 500만원을 초과하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아도 이들 공과금이 증가한다"며 "월세 임대사업이 과연 남는 장사인지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임대인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도록 과세 속도를 늦추고 세율도 낮추는 '절충안'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앞으로 투자개념이 접목된 소형 아파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월세라도 2가구까지는 '완충지대'로 비과세하고 전세처럼 3가구 이상 소유자에 대해서만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저금리 시대가 지속하면서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 중에는 퇴직금으로 마련한 주택 임대소득이 소득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며 "집부자들은 갖고 있던 집을 처분해도 큰 탈이 없지만 작게는 월 300만∼400만원, 많게는 500만∼600만원 수준의 임대소득으로 생활해오던 은퇴자들은 세부담을 덜어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전문위원은 "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 취지는 공감하지만 급격한 처방은 되레 시장에 부작용만 낳는다"며 "과거 미신고분에 대한 것은 넘어가고 일정 시점 이후 과세를 하거나 세율도 낮춰 다주택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