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절제된 언어로 수교 이래 최악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과 대응, 해법을 정확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보다 조금 일찍 출범한 2기 아베 내각은 박 대통령의 이런 바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침략역사를 부정하고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기습적으로 강행했으며, 급기야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했던 1993년의 '고노 담화'가 사실인지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답은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고,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한일관계가 일제 식민지배라는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조자 했던 역사인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베 총리 등 지금의 일본 지도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퇴행적인 행태만 노정한다는 문제인식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고노 담화' 검증과 관련해 "과거의 역사를 부정할수록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이다. 살아있는 진술과 증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정치적 이해만을 위해 그 것을 진정하지 않는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한 부분은 비판과 비난의 언어 없이도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나타낸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울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이 일본 전체에 있지 않고 정치지도자들에게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동안 쌓아온 양국 국민들의 우정과 신뢰를 정치가 막아서는 안된다고 한 부분이 그 것이다.
그러면서 "인류 보편의 양식과 전후 독일 등의 선례에 따라 협력과 평화, 공영의 미래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과거의 부정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길 기대한다"고 정리한 부분은 한일관계 개선의 공을 일본이 쥐고 있다는 점과 그 해법을 함께 압축적으로 제시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1년전 3.1절 기념사와 비교해 보면 올해 3.1절 기념사의 대일 메시지 강도가 훨씬 강하고 분량도 많다. 지난해에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문장이 7문장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2배 늘어난 14문장이으로 늘었다.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엄중한 상황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