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7일 '국가정보원 첩자'라며 체포해 억류 중이던 한국인 선교사 김정욱 씨의 기자회견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 씨는 "가족에게 건강하게 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기자회견을 요청했다"며 북한 당국이 '자비'를 베풀어 석방해주기를 호소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주의적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앞으로 석방을 위한 남측과 교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지난 5일 남한과 적십자 실무접촉을 하고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에 합의했고, 이달 14일에는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한미군사연습에도 상봉행사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비교적 원만히 치러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을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로 규정한 상황에서 북한이 인도적 현안을 통해 남북관계를 푸는 실마리로 사용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24일 북한에 구제역 방역 및 퇴치 지원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것도 인도주의적 현안으로 대응한 성격이 커 보인다.
남북관계에서 인도적 현안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내달 3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본 적십자사와 실무접촉을 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이번 접촉에서는 2012년 8월 북한 내 일본인 유골 송환과 성묘 문제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는 이뤘지만 이행에 들어가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협의에서는 구체적인 이행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이 문제는 북일 적십자사가 2002년부터 협의를 해온 양국간 해묵은 인도적 숙제다.
여기에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일본이 현안으로 생각하는 납치자 문제나 북송 일본인 처 등의 문제에 대한 의견교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접촉은 적십자사간 접촉이지만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 과장과 북한 외무성 당국자가 배석할 예정이어서 당국간 회담을 위한 탐색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억류 중인 케네스 배 씨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인도적 현안을 통해 꽉 막힌 북미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작년 8월에 이어 이달 중에 미국의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한을 방문해 배 씨와 함께 나올 것으로 보였지만, 북한은 B-5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서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내세워 무산시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관계 당사국에 접근하기 용이한 인도적 현안을 내세워 대화를 모색하는 것 같다"며 "이를 매개로 해서 정치, 경제, 외교적 현안으로 확대해 나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처럼 남한과 미국, 일본 등과 인도주의 현안을 내세워 전방위적인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관계 개선을 통한 고립 탈피 효과와 더불어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화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화 상대방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만큼 출범 3년째를 맞은 김정은 체제가 이러한 정치·외교적 효과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남쪽에 대한 화해 제스처를 통해 대중, 대미 관계를 개선하고 6자회담을 열어 대외 상황을 안정시키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