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변상욱의 기자수첩]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을 보다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동안 진행돼 온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서구 유럽화의 새 시대를 꿈꿔 온 시민세력과 야당에 의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여당이 집회·시위 규제 강화법을 만들어 반발을 억누르려다 사태가 악화돼 집시법은 백지화됐고 총리가 사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수습국면에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시민시위대 철수 과정에서 반정부 세력과 진압부대 간에 유혈 충돌이 벌어져 26명이 숨지면서 사태는 다시 악화됐다.

EU가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관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여행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고 시민과 야당의 저항이 거세졌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친러시아파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 키예프를 떠나 동부 하리코프 지역으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곧바로 야권 지도자 티모셴코 전 총리를 석방했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과 5월 조기 대통령선거를 추진 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유혈충돌로 26명이 사망했다. (사진=BBC 영상 캡처)
◈ 우크라이나 없는 러시아는 앙꼬 없는…

그러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는 친러시아파 지역정치 세력들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쳤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친 서방 임시정권에 반대하는 저항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경제가 나빠져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려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은 서로 재정지원을 약속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를 놓칠 수 없다.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좋게 말하면 동질감, 나쁘게 말하면 자기네 변방 속국이라는 정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떠나 서방으로 흡수되면 푸틴으로서는 정치적 책임이 크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어가 흔히 쓰였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가 최근까지 제2외국어였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러시아 함대 기지가 있고,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 송유관도 80% 정도가 우크라이나를 지나간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벨로루시 등 다른 주변국가에서도 반러시아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 중 하나.

또 푸틴 대통령이 야심차게 구상중인 ‘유라시아경제연합’에 커다란 시장과 천연자원을 보유한 우크라이나가 빠지면 꼴이 우스워진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친러시아파를 움직여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거의 막아낼 순간에 일이 꼬인 것.

러시아가 군대를 동원해 밀고 들어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이미 미국 백악관이 러시아 군사개입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 왜 우크라이나는 변방으로만 머물까?

우크라이나는 슬라브 종족 중 동쪽에 자리한 동슬라브족 지역이다. 지금으로 치면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가 동슬라브에 속한다. 슬라브 족을 하나로 묶었던 키예프 루시의 중심이 지금의 우크라이나이기에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키예프다. 종교로는 동로마로부터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여 루스 정교회라는 독창적인 정교회를 세워 지켜왔다.

키예프 루시가 몽골에 정복당했고, 수백 년 지배를 당하다 각 지역별로 작은 국가들이 등장하며 제각각 몽골군을 몰아낸다. 가장 먼저 모스크바 공국이 동슬라브의 동쪽을 차지해 러시아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어 북쪽에 있던 리투아니아 공국이 동슬라브의 남쪽과 서쪽, 즉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지역을 차지하며 부족들을 흡수했고 우크라이나 지역의 종교와 문화는 자유롭게 놔두고 유지토록 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란드는 가톨릭, 우크라이나·벨로루시의 루시인들은 루스정교회여서 종교 갈등은 필연적이었고 폴란드의 차별과 탄압이 벌어지고 만다. 우크라이나 루스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친 폴란드와 반 폴란드로 나뉘고 반폴란드 세력은 독립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들의 독립투쟁을 모스크바공국 즉 러시아가 지원한다. 이 세력을 코자크(자유민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율 브린너, 토니 커티스가 등장하는 영화 ‘대장 부리바’가 반폴란드 독립투쟁을 그린 작품).

결국 우크라이나·벨로루시 지역은 드네프르 강을 기준으로 해서 동쪽은 모스크바 공국, 서쪽은 폴란드로 갈라지게 되었고 훗날 모두 러시아에 흡수돼 소련이 되었다가 다시 독립해 지금의 우크라이나로 되돌아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서분열의 역사는 이러하다. 지금은 친러시아계가 동남쪽에 집중돼 있고 친서방계가 서쪽에 몰려 있는 상황. 마치 우리의 영호남 동서갈등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불행 중 다행으로 종교대립, 동서 진영에 대한 외세의 개입은 없다. 그러나 국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회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커다란 위험요소로 돌변함을 간과해선 안 된다. 둘로 나뉘어 점점 극단으로만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갈등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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