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피겨 여왕'답게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연기로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주무기 트리플 악셀 등 전성기 못지 않은 연기로 쇼트프로그램의 부진을 만회하고 펑펑 울어 진한 여운을 남겼다.
김연아는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로, 아사다는 노 메달로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두 선수 모두에게 의미 있는 올림픽이었다. 김연아는 18년 선수 생활의 대미를 뜻깊게 장식했고, 아사다는 자존심을 회복하며 향후 선수 생활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대회로 10여 년 치열하게 전개됐던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도 막을 내렸다. 김연아의 은퇴로 아사다만 남은 시즌을 치르게 됐다. 아사다는 오는 3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다음 시즌 역시 현역 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이 적잖다.
그렇다면 두 선수에게 서로는 어떤 존재일까. 주니어 시절부터 양국 최고의 스타로 꼽혔던 둘은 어릴 때는 아사다가 우위에 있었지만 시니어 데뷔 이후에는 김연아가 아사다를 압도한 형국이었다. 밴쿠버올림픽에 이어 소치에서도 성적에서는 김연아가 앞섰다. 그러나 둘은 단순히 성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
김연아는 일단 선수 생활을 돌이켜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벌로 아사다를 꼽았다. 소치올림픽 경기를 마친 뒤 21일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어릴 때부터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는 등 비슷한 점이 가장 많다"면서 "우리 둘처럼 오랫동안 경쟁하고 비교 당했던 선수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방송사 인터뷰에서는 아사다와 인연에 대해 "징하다"는 표현을 쓴 바 있다.
하지만 진한 동료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뒤 서럽게 운 아사다에 대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면서 "아사다가 울먹일 때 나도 울컥했다"고 안쓰러웠던 심경을 밝혔다.
아사다 역시 마찬가지다. 25일 소치올림픽 귀국 기자회견에서 아사다는 김연아에 대해 "어릴 때부터 라이벌로 주목받았다"면서도 "그러나 경기장에서 나오면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와 같은 관계"라고 말했다.
김연아의 은퇴로 라이벌 대결이 종식된 소치올림픽. 두 선수는 서로를 보듬어주며 힘든 세월을 보낸 맞수를 품에 안았다.
김연아가 21일 코리아하우스 인터뷰에서 먼저 아사다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했고, 아사다 역시 23일 갈라쇼를 마치고 "김연아도 고생 많았다"고 화답했다. 혹독했던 훈련, 그보다 더 힘겨웠을 마음 고생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줬던 한일 피겨 천재들의 훈훈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