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파인 얼음판과 넘어지는 상대 선수의 몸이 그렇게도 야속했던 쇼트트랙, 그럼에도 야무지고 끈끈했던 태극 낭자들, 또 다른 얼음판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 같았던 네덜란드, 그 오렌지 군단보다 더 빛났던 빙속 여제, 선후배의 뜨거운 우정으로 지켰던 남자의 자존심, 그리고 은반 위를 수놓았던 피겨 여왕의 마지막 연기...
그뿐인가요? 열심히 밀고 쓸었던 '컬스 데이'의 외침, 새 역사를 써갔던 스키와 썰매의 위대한 도전, 그래서 얼음판을 미끄러지듯, 눈 덮힌 레인을 활강하듯, 썰매가 질주하듯, 소치의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렀나 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선수들의 눈물입니다. 그토록 그리던 꿈의 무대에서 4년 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뒤 흐르는 눈물, 보는 사람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그들의 눈물은 성적을 떠나 가장 값진 결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마다 의미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감격과 환희, 슬픔과 아쉬움, 후련함과 뿌듯함, 미련과 다짐까지... 하지만 그 뜨거움과 감정의 충일함만은 같을 겁니다.
사람은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눈물도 거짓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악어의 눈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치올림픽 무대에서 그들이 보인 눈물은 순도 100%일 겁니다.
동메달 시상식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박승희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흥건했습니다. 또 취재진을 보자마자 다시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먼저 인터뷰를 하던 최광복 대표팀 감독이 안아 다독거린 뒤에야 비로소 진정할 정도였습니다. 박승희는 "동메달도 정말 감사하다"고 했지만 "금메달을 딸 기회를 놓친 게 너무 아쉽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승희는 아쉬움의 눈물을 기어이 감격의 눈물로 바꿨습니다. 심석희(17, 세화여고), 김아랑(19, 전주제일고), 조해리(28, 고양시청), 공상정(18, 유봉여고) 등 언니, 동생들과 함께 계주 3000m에서 숙적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오른 뒤 다함께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얼마든지 흘려도 아깝지 않을 눈물. 여기에 박승희는 1000m까지 2관왕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충격의 탈락에 신다운은 경기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날 밤 신다운은 최광복 감독을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볼 수 없었고, 전해만 들었지만 아픔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던 눈물이었습니다. 신다운은 끝내 이번 대회 메달을 따지 못하면서 눈물의 의미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대회를 위한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김해진과 동갑내기 박소연(신목고)은 김연아 덕분에 꿈의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출전권 3장을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연아였던 만큼 김해진은 언니를 위해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뜻을 이루지 못해 저절로 터져나왔던 눈물. 김해진은 실수가 아쉬웠던 것보다 우선 미안했던 겁니다. 하지만 김해진은 언니의 마지막 무대를 똑똑히 두 눈에 담으며 4년 뒤 평창을 기약했습니다.
최고의 연기를 펼치고도 석연찮은 판정에 은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던 상황. 개최국 러시아의 홈 이점을 업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했던 여왕. 이런 사연들과 맞물려 김연아가 흘린 눈물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볼 수가 없었기에, 남몰래 흘려야 했기에 가슴에 더욱 큰 울림을 주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김연아는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눈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판정과 점수에 대한 억울함과 속상함이 아닌, 그저 열심히 과정을 밟아온, 또 혹독하게 훈련해왔던 시간을 연기로 여과없이 펼쳐낸 자신이 대견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성적에 대한 세속적 판단을 넘어선 한 인간의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을까요?
이밖에도 숱한 눈물들이 소치를 적셨을 겁니다. 올림픽 2연패를 이룬 빙속 여제 이상화(25, 서울시청)의 당당한 눈물, 병상의 동생 노진규(22, 한체대)를 위한 메달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노선영(25, 강원시청)이 흘린 누나의 눈물, 아쉽게 4강 진출이 무산됐던 여자 컬링 대표팀의 합쳐진 눈물... 이밖에도 제가 보지 못하고, 겪지 못했던 수많은 눈물들이 있을 겁니다.
어떤 눈물이라서 뜨겁지 않고 아프지 않고 짜지 않겠습니까? 4년 동안 그토록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던 태극 전사들, 이제 몸에 더 이상 나올 수분이 없을 줄 알았지만 그래도 북받쳐오는 감정이 밖으로 밀어내는 눈물들. 인간 한계에 도전했던 그 노력의 결정체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 눈물의 의미를 가슴에 깊이 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조국을 바꾸는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이 얼음판에 남긴 키스와 눈물까지...88개국 2873명 선수들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뜨겁거나(Hot) 그렇지 않거나(Cool) 모두 그대들이 흘린 소중한 눈물(Yours)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