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가족들과 재회한 전후 납북자는 오대양호와 수원33호 선원 2명이다.
오대양호 선원이었던 박양수(55) 씨는 지난 1972년 12월 서해에서 홍어잡이 도중 납북됐고 이날 동생 박양곤(52) 씨를 만났다.
동생 박 씨는 전날 취재진과 만나 "형님은 생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 그 어린 나이에 '배를 모르고 떠밀려서' 배를 탔다"면서 "형님을 만나면 첫마디가 '고맙습니다, 얼굴을 뵙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안타까운 것이 나도 형님을 뵙고 싶지만 누님께서는 더 안타까워하신다"며 "오매불망 동생 얼굴을 보실 기회가 있으려나 했는데 이제 그 기회나마 잡지도 못하게 되셔서 안타깝다"고 되뇌었다.
박 씨는 과거 납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생계유지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저희 큰형님도 돌아가셨지만 그 분도 생업을 하기 위해서 해외를 왕래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결국 저런 문제가 발생돼서 더 이상 출국을 못하고 그 당시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수원33호 선원이었던 최영철(61) 씨도 지난 1974년 2월 역시 서해에서 홍어잡이 도중 납북됐으며 이날 형 최선득(71) 씨와 재회했다.
형 최 씨는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올라와서 외양어선을 탔다"면서 "딴에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학교 갈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씨는 "동생이 결혼도 하고 조카도 있을 것인데 조카들도 꼭 보고 싶다"면서 "동생이 살아온 이야기, 우리 가족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다 해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카인 최용성(43) 씨는 영철 씨에게 편지를 보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운명 당시 상황 등 그동안 가족들이 살아온 일들을 세세하게 전했다.
조카 최 씨는 "고향땅을 떠나셔서 수십년 동안 서로 그리워하던 작은 아버지와 형제들의 그리움과 애틋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큰 아버지를 만나시게 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고, 작은 아버지 어떻게 사시는지 많은 안부를 물으시면서 정다운 시간을 보내십시오"라고 썼다.
납북어부들과 함께 남측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간 전시납북자 3명도 포함돼 있다.
최남순(64·여) 씨는 6.25 당시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사망)가 북한에서 다시 결혼해 낳은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최 씨는 "아버지 생신날 밥을 해서 뚜껑을 덮으면 뚜껑에 물기가 생겨 뚜껑 바깥으로 물이 떨어지면 살아있어서 그 눈물이 떨어진다며 위안을 삼았다"고 그 동안의 회한을 표현했다.
최씨는 "북에 동생 3남매가 있다고 한다"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고 아버지 모습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에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