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울음이 들려요" 살처분 공무원 트라우마 호소

"밤에 잠자리에 들면 오리가 '꽥 꽥'하며 우는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따라 닭과 오리 130만여 마리의 살처분에 나선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 공무원들이 정신적 장애인 트라우마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살처분현장에 세 차례 투입된 음성군 공무원 A(28·9급)씨는 20일 공무원노조를 찾아가 살처분 이후에 겪는 고통을 털어놓았다.

A씨는 "오리 살처분을 다녀온 뒤 밤에 혼자 있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끔찍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꽥 꽥'하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다 보니 닭이나 오리, 돼지 등 가축을 도살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살처분 경험을 하다 보니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가 어렵다"고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했다.

음성군 공무원노조 이화영 지부장은 "지난 2일 대소면의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뒤 살처분에 참여했던 공무원 20명가량이 노조를 방문해 살처분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농촌 경험이 없는 젊은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가금류 76만여 마리를 살처분한 진천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부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다녀온 뒤 두통과 몸살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2일에는 주민복지과의 정모(41·7급)씨가 퇴근을 하다 집 앞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자 공무원 노조는 "멀쩡한 동물학살에 동원돼 후유증과 트라우마 증상에 시달린다"며 "(공무원들은) 순서가 되면 언제든지 살육현장으로 달려가 (오리·닭을) '학살'한 뒤 돌아와 밀린 업무를 하고, 감기 기운이라도 느끼면 (AI에 감염될까)불안해하고 있다"는 대자보를 19일 군청 게시판에 내걸었다.

충북 재난심리지원센터에도 살처분에 참여했던 3명이 후유증을 호소해 정신 상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센터는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과 농민 등을 대상으로 한 상담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음성·진천지역에서는 19일까지 96만여 마리를 살처분했고, 22일까지 34만 마리를 추가 살처분할 계획이다.

그동안 살처분에 공무원 1천270여명을 비롯해 2천120여명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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