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운형 할아버지(이산가족 상봉자)
드디어 떠납니다. 이산가족들 정말 우여곡절 끝에 오늘 아침 북으로 떠납니다. 그분들 중에 한 분을 연결해 보려고 하는데요. 90세 이상 노인이 25분 계십니다. 지금부터 만날 분은 그분들 중 한 분입니다. 올해 나이 아흔셋 박운형 할아버님을 연결해 보죠. 할아버님 안녕하세요.
◆ 박운형> 예.
◇ 김현정> 어떻게 밤잠은 잘 주무셨어요?
◆ 박운형> 예, 잘 잤어요. 안 자면 내 몸이 쇠약해지는데, 내 몸을 위해서 자야지.
◇ 김현정>그럼요, 건강하게 만나시려면 잘 주무셔야죠. 그러니까 따님을 만나신다고요?
◆ 박운형> 동생 둘에 딸 하나인데 동생 둘 먼저 만나고 딸 만나고 그래야지. 순서대로 만난다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6.25 때 다 헤어지신 거죠?
◆ 박운형> 그렇죠.
◇ 김현정> 헤어질 때 따님은 몇 살이었습니까?
◆ 박운형> 한 대여섯 살 됐어요.
◇ 김현정> 그러면 딸 얼굴이 기억나세요?
◆ 박운형> 아무리 안 잊어버리려고 해도 너무 오래되니까 날지 안 날지 만나봐야 알겠어요.
◇ 김현정> 어떻게 생겼었는지 그것도...
◆ 박운형> 이제는 그것도 몰라요. 그 애가 한 두 살 때 헤어졌거든. 내가 고향집은 태천인데직장을 따라서 평양에 나와 있었거든. 그러니까 한 두 살 때 보고서 못 봤으니까 얼굴은 알 수 없죠.
◆ 박운형> 연초공장, 담배 만드는 공장.
◇ 김현정> 담배공장에서 일을 하시다가...그런데 전쟁이 났는데 가족들을 놓고 어떻게 피난 갈 생각을 하셨어요?
◆ 박운형> 피난도 아니지. 고향은 평안북도 태천군 동면 은흥리 247번지인데 평양은, 평안남도거든. 6.25가 터지니까 며칠 있으면 도로 안정될 거라고 그래서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잖아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오래갈 전쟁이 아니라 잠깐만 몸 피신하고 다시 오면 된다, 그 소리 듣고......
◆ 박운형> 그렇죠. 한 2, 3개월 되면 직장에 도로 돌아간다고 이렇게 다 생각했거든.
◇ 김현정> 그게 그러니까 영영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신 거예요, 그때?
◆ 박운형> 그럼, 상상도 못했죠.
◇ 김현정> 그리고 평생을 못 보셨어요. 한 번도 못 보신 거죠?
◆ 박운형> 한 번도 못 봤어요.
◇ 김현정> 사진이라도 한 장 가지고 계셨습니까?
◆ 박운형> 무슨 사진이요. 그때 나올 때는 갈아입을 팬티도 없이 뛰어나가서...
◇ 김현정> 아무것도 못 가지고, 속옷 한 장도 못 가지고 나오셨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평생을 한 번도 못 보셨으니 얼마나 보고 싶으셨어요, 가족들이.
◆ 박운형> 잠시도 잊지 못했단 말입니다. 생이별 했는데 잊어버릴 수 있어요? 항상 생각하게 되지.
◇ 김현정> 그렇게 잠시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가족이었는데 이산가족상봉이 지난해부터 될 듯, 될 듯 깨지고, 깨지고.
◆ 박운형> 그때 될 듯, 될 듯해서 그때 전에 반갑게 생각을 하고 선물도 준비하고 했다가 못 간다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 다 줘버리고 이번에 다시 조금 준비했어요.
◇ 김현정> 동네 사람들 다 줘버리고.. 이번에는 뭘 준비하셨어요?
◆ 박운형> 무엇이 좋을지 몰라서 입는 거 속내의 같은 거 한 서너 벌하고, 여자 겉옷 있잖아요. 추울 때 입는 거. 뭐라 그래요?
◇ 김현정> 코트.
◆ 박운형> 그것하고 약품 좀 하고. 거기 있는가 없는가 모르겠지만 다 여기서 쓰는 걸로.
◇ 김현정> 제가 듣기로는 라디오도 준비하셨다면서요?
◆ 박운형> 라디오는 준비한 게 아니고 내가 지금 할배라 쭉쩡거려도 손때가 묻은 거니까.
◇ 김현정> 내가 쓰던 거, 손때 묻은 거니까...
◆ 박운형> 그렇지. 여기서는 새 것만 한다고 그러지만 나는 이거 쓰던 거. 내가 아끼며 쓰던 거라도, 내 손때가 묻었으니까 이걸 하나 주고 싶어서 라디오 하나하고 내가 가지고 사랑하던 카메라 하나 하고 이렇게 줄려고.
◇ 김현정> 내가 사랑하던 손때 묻은 카메라하고 손때 묻은 라디오하고. "딸아" 하면서 이거 보면서 내 생각하라고. 제가 눈물 나려고 하네요 할아버님.
◆ 박운형> 그리고 이제 내가 지팡이를 하나 또 선물하려고 해, 지팡이.
◇ 김현정> 지팡이, 내가 쓰던 거.
◆ 박운형> 아니지, 그건 새것. 왜 그런가 하니 아무래도 동생이 한 80살 됐다고 하지만 가시나, 나보다 더 늙었을까 싶어서. 그래서 지팡이를 준비했습니다.
◆ 박운형> 이게 억지로 실감을 내는 거지, 실감이 안 납니다.
◇ 김현정> 두 살 때 헤어진 딸이 이제 예순을 훌쩍 넘어서 나타나니까 이게 실감이 나시겠습니까?
◆ 박운형> 어허... 70 가까이 됩니다.
◇ 김현정> 얼굴은 못 알아보실 테고. 그래도 손잡으면 느낌은 알까요?
◆ 박운형> 한 혈통이니까 왜 안 나겠어요? 내 피, 혈을 받았으니까. 알긴 알 거예요.
◇ 김현정> 만나면 무슨 얘기 제일 먼저 하고 싶으세요?
◆ 박운형> 내가 보살펴주지 못했는데도 잘 컸다고. 그리고 할머니가 잘 돌봐줘서 너희들도 이렇게 성장했구나. 그런 얘기밖에 더 할 게 있어요.
◇ 김현정> 엄마가 잘 키웠구나, 이런 얘기. 한번 손잡고 나시면 같이 살고 싶어지지 않으시려나 모르겠어요.
◆ 박운형> 그거는 안 될 거 뭐하려고 그래 속상만 하게. 같이 살고 싶은 마음뿐이지. 그렇게 안 될 거 아니에요.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통일이 될 거야. 그렇게 믿고 있지.
◇ 김현정> 통일될 때까지 건강 잘 지키셔야 되겠어요, 할아버님.
◆ 박운형> 그럼요. 설사 저승사자가 와도 “자네 잘못 왔네, 다른 데 잘못왔네.” 이렇게 보내지 뭐.
◇ 김현정> 꼭 그러셔야 됩니다, 할아버님.
◆ 박운형> 나는 앞으로 통일될 때까지, 10년을 안 넘어, 통일이. 그렇게 믿고 한 10년은 살고 있을 거다.
◇ 김현정> 그럼요. 이제 103세 될 때까지 사시면 통일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 박운형> 그렇죠. 그 정도는 자신감 있지.
◇ 김현정> 할아버님 아무쪼록 건강하게 다녀오시고요. 잘 자라준 딸 손 꼭 잡고 한참동안 놓지 마셔야 됩니다.
◆ 박운형> 그럴게요.
◇ 김현정> 짧지만 행복한 시간 보내고 돌아오세요.
◆ 박운형> 네, 수고하세요.
◇ 김현정> 가슴 찡한 인터뷰네요. 이산가족 만나러 북으로 가는 버스 타기 직전이십니다. 박운형 할아버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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