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시론] 대통령 지시만 기다리는 관료조직

새해 업무 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깨알리더십'이 공직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각 부처의 업무 뿐만 아니라, 세부현안에까지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박 대통령이 안현수 선수 귀화와 관련해 체육계 부조리를 지적하자 관련 부처와 체육계가 발칵 뒤집히고, 휴대폰 보조금 지급 문제를 언급한 이후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휴대폰 가격이 급등한 예는 공직사회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8일 CJ 헬로비젼 주가 급락은 대통령의 방송시장의 독과점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공기업 개혁과 관련한 대통령의 복지관이나 노조에 대한 편견 역시 왜곡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지시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관료사회의 경직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일선 공무원의 소관 사항일 수 있는 업무를 꼼꼼하게 지시하고, 수석비서관과 장관들은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대통령이 말을 해야 움직이는 조직은 정상적인 관료조직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 역시 미세한 사안까지 꼼꼼하게 발언하는 것이 관료조직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고 복지부동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당청관계에서의 청와대의 일방적 우위가 지적되고 있는 마당에 공직사회에까지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이 계속되는 것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부각될 우려가 크다. 청와대에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될 수 있다. 이러한 국정운영 스타일은 대선 공약이었던 책임장관의 구현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장관, 비서관들의 토론을 바탕으로 특정 현안의 거시적 흐름이나 방향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나감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 게다가 민감한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구체적 발언이 가이드 라인처럼 해석될 수 있는 경우에는 여당이나 각 부처의 정책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대통령제의 견제와 균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권 내부에서부터 부처별 자율성과 책임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이는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정치적 부담이 지워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최창렬 CBS 객원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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