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된 동해안 폭설은 '천재'지만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제설 작업을 태만히 한 것은 결국 '인재'라는 것이다.
또 건물이 폭설과 같은 압력에 취약한 구조거나 시공·관리상 부실이 있었다는 등 다양한 가능성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18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사고가 난 강당은 외벽과 지붕을 철골 구조로 만든 뒤 주변을 샌드위치 패널로 덧대는 일명 PEB공법(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s)에 따라 불과 수개월만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법은 건물 중간에 기둥이 없는 창고나 강당 등을 짓는데 주로 쓰여 공간 활용도가 높은 반면 지붕에 눈이 쌓일 경우 제때 제거해주지 않으면 무너지는 단점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경주지역에 최근 1주일 동안 평균 50㎝가 넘는 눈이 쌓였지만 제설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눈이 1㎡의 면적에 50㎝ 가량 쌓이면 눈 무게만 평균 150㎏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붕의 면적이 1천205㎡라는 점을 감안하면 붕괴된 강당 지붕에 쌓인 눈 무게는 180t 이상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주 외동산업단지와 같은 경주지역 공장이나 일부 식당건물 등 비슷한 자재나 형태·구조로 지어진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유독 이 강당만 무너진 것은 리조트측이 지붕에 쌓인 눈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년 전 이 리조트 강당에서 세미나 행사를 가진 적이 있다는 한 화학 플랜트 설계업체의 관계자는 "이 강당은 원래부터 건물 중간에 기둥이 없는 PEB 공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기둥이 없어 하중을 버티는 힘이 약해 사고가 빚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리조트측의 관리 부실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같은 공법으로 지어진 인근 공장들은 최근의 폭설로 인한 지붕 붕괴를 막기 위해 소방 호스로 밤을 새워 눈을 녹인 것으로 아는데 리조트측에서 행사를 앞두고 이 같은 노력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정도 규모의 리조트라면 건물 관리자들은 최근 폭설을 감안할 때 눈을 치우지 않은 채 붕괴 위험이 있는 강당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흥분했다.
특히 리조트에 인접한 울산지역에는 1주일여 전 대설주의보가 발령되면서 많은 눈이 내려 같은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전도에도 빨간 불이 켜진 상태였다.
실제로 지난 11일 0시 40분께 울산시 북구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공장 지붕이 붕괴돼 공장 안에 있던 근로자 이모(37)씨가 숨지고, 박모(36)씨 등 2명이 경상을 입었다.
전날에도 같은 공법으로 지어진 인근 자동차 부품업체 지붕이 눈 때문에 무너져 졸업을 앞둔 울산 모 고등학교 실습생 김모(19)군이 깔려 숨지는 등 유사 사고가 속출한 뒤였다.
이와함께 시공 과정에서 정품 자재를 사용하지 않는 등 설계도와 다르게 부실한 공사가 이뤄졌을 의혹도 제기됐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많이 했다는 한 30대 현장 전문가는 사고 직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TV 화면을 보니 무너진 강당 지붕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H빔은 정품이 아니거나 아예 H빔이 아닐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건축 경험상) 지붕이 무너진 강당은 제대로 공사가 된 구조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붕괴 현장을 육안으로 볼 때 무너진 구조물의 재질 자체가 철골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고 원인과 관련, 다양한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경찰은 사고현장 정밀 감식을 시작으로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키로 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불법·과실이 드러나면 리조트 관계자들을 예외없이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최문태 경주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붕 제설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수백 명이 참여하는 행사를 강당에서 하게 된 경위를 비롯해 붕괴 사고와 관련해 추정되거나 의혹이 제기되는 요인은 모두 조사할 방침"이라며 "철저한 조사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을 방문한 이성한 경찰청장도 "허가과정과 설계, 시공, 관리 등 총체적으로 한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 책임질 사람은 반드시 책임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