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자람 (판소리 소리꾼)
이자람, 어르신들 중에는 아직도 ‘예솔이’로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훌쩍 커서 우리 판소리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 됐습니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두 시간 공연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이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판소리극이 전회 매진 기록 세우는 건 아마 드물지 싶은데요. 젊은 소리꾼 이자람 씨가 이번에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작가죠.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을 판소리 무대에 올린답니다. 현대소설이 어떻게 판소리가 될까 궁금한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소리꾼 이자람 씨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이자람 씨 안녕하세요.
◆ 이자람>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이 노래 부르신 이자람 씨 맞는 거죠?
◆ 이자람> 네, 맞습니다. 저 어렸을 때입니다.
◇ 김현정> 그 노래 부른 게 1980년?
◆ 이자람> 1984년도입니다.
◇ 김현정> 그러면 이게 몇 년 전이에요, 도대체? 그런데 아직도 예솔이로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죠?
◆ 이자람> 네, 아직도 계세요. 어르신들 세대는 아직도 자람이보다 예솔이가 더 편하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너무 오래 따라 붙어 다녀서 그 꼬리표가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 이자람> 아니요, 불편하게 느끼던 철없던 시절은 지나갔고요. 이제는 이렇게 알아줘서, 기억해줘서 그것들이 제게 너무 큰 힘이 되더라고요.
◇ 김현정> 하여튼 동요를 기가 막히게 하던 꼬마스타였는데 보통 그렇게 되면 대중가요를 부르는 아이돌로 성장을 한다든지 대중가요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길처럼 느껴지는데 이자람 씨는.
◆ 이자람> (웃음) 아이돌은 일단 외모가 안 되고요.
◇ 김현정> (웃음) 왜요? 이자람 씨 미인인데.
◆ 이자람> (웃음) 농담이고요. 그것보다 제가 예솔이 시절에 우연히 판소리를 만났거든요. 계속 판소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자랐습니다.
◇ 김현정> 왜 그 시절에 그 판소리가 뭐가 좋던가요, 어린아이 귀에?
◆ 이자람> 저는 판소리를 바로 좋아했던 게 아니고요. 판소리가 뭔지 생경한 그 자체로 선생님을 만나고 어린 친구들이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해야 되니까 하듯이 저도 그렇게 판소리를 했던 시절이 되게 길었어요.
◇ 김현정> 그러다가 즉 배워야 하니까 배운다고 열심히 배우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내 길이구나,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봐야겠구나’ 이런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입니까?
◆ 이자람> 대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 서적들을 보다가 제가 공연하는 이야기들을 공연으로 만들어서 대신의 목소리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그러면 내가 제일 잘 가지고 있는 무기는 뭘까 했더니 판소리라는 테크닉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어서 막 했더니 그게 브레히트여서 ‘판소리가 브레히트? 우와!‘ 이렇게.
◇ 김현정> 그렇게 된 거군요. 바로 그때 대표적인 무대, 2011년 무대죠. 독일작가 브레히트의 작품을 우리 판소리로. 이게 누가 극본 써주고 연기만 하신 게 아니라 직접 다 판소리 화를 한 거예요, 이자람 씨가.
◆ 이자람> 그때 연출, 남인우 연출을 만났어요. 워낙에 알던 지인 분이셨고 제가 의지하던 연출인이셨는데 ‘나는 판소리를 쓰고 싶어요, 소리꾼이니까.‘ 라고 했더니 작가를 찾자. 그래서 막 찾다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직접 써봐라’ 라고 제안을 하셔서 한번 써봤는데 그게 사천가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억척가를 써보고 이렇게 했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과연 브레히트, 독일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우리 판소리로 탄생할 수 있을까 의심들을 했는데 아주 멋지게 성공시켰고 관객들을 들었다놨다, 판소리가 저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이런 반응들이 왔죠?
◆ 이자람>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가장 기억에 남는 팬,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어떤 분이에요?
◆ 이자람> ‘사천가’를 이어받은 두 소리꾼이 있어요. 그 소리꾼 중에 한 친구가 공연을 하는데 사천가 중에 주인공 순덕이를 찾는 장면이 있습니다. ‘순덕이 내놔, 순덕이 어디 있어’ 하는데 갑자기 웬 할머니께서 저 2층에서 ‘내가 순덕이야’ 하면서 손을 흔드셨어요. (웃음) 거기서 순덕이가 나타나면 안 되는데. 우리 소리꾼이 웃음이 터져서 ‘아냐, 그 순덕이가 아니야’ 하면서 공연을 이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웃음) 본명이 순덕 씨셨군요. 신이 나서. 그게 묘미 아닙니까? 예측불허의 상황들. 그렇게 자격들을 이어 오다가 2014년 또 하나의 도전을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작가 주요섭 씨의 작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그 작가의 작품들을 하시는 거예요? ‘추물’하고 ‘살인’이라는 두 개의 단편선을. 우리 단편 작가들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왜 주요섭 씨였습니까?
◆ 이자람> 그러게요. 되게 많은 단편 근대소설들을 찾아봤었어요. 왜냐하면 ‘사천가’, ‘억척가’가 둘 다 소리꾼이 두 시간 반을 무대에서 끌어가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판소리도 짧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단편소설을 찾다가 주요섭 작가님의 단편들을 보면서 짧은 판소리고 뭐고 그 목적은 다 잊어버린 채로 이야기 속에 완전 푹 빠져들었어요. 왜냐하면 분명히 남자 분이신데 그리고 근대화 속의 지식인이신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급이 있다면 굉장히 낮은 계급에 있는 여자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써내셨더라고요. 그 근대화 속에서...
◇ 김현정> 제가 알고 있기로는 작품 속의 주인공이 언년이, 굉장히 못 생긴. 제목도 ‘추물’이잖아요. 언년이가 주인공이고 한 작품에서는 ‘우뽀’라는 창부가 주인공이고 그래요. 그런 여성들의 심리묘사를 너무나 잘한 작품.
◆ 이자람> 네. 그래서 너무나 놀라웠고 재미있었고요.
◇ 김현정> 제가 보니까 이번에 창을 만들고, 창을 만드는 걸 작창이라고 하는데. 창을 만드는 작업만 하고 대본 쓰는 작업만 하고 무대에는 이자람 씨가 안 서시네요?
◆ 이자람>네, 저는 이번에 작가이자 작창가이자 음악감독까지만 담당합니다.
◇ 김현정> 왜 안 서세요? 이자람 씨의 무대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 이자람> 그것도 그런데요. 또한 제가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사창가의 소리꾼 이승희, 김소진 양이... 옆에서 지켜봤더니 지금 시대의 많은 소리꾼들이 작가를 만나지 못해서 혹은 스스로 작을 쓸 여건이 안 돼서 저처럼 사창가니 억척가니 자신의 작품을 만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 계속 한 시대를 마음껏, 소리꾼만 살다 가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 김현정> 나만 스타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판소리 전체가 부흥이 돼야 되는데 이런 생각.
◆ 이자람> 그것이 결국 저만 스타가 되는 게 저에게 절대 좋은 것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판소리라는 장르, 이것이 아직 계속 척박한 장르라면 제가 공연이 아무리 매진되고 하는 것이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더라고요.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고.
◇ 김현정> 그런데 그런 생각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내가 스타가 되면 이제 나만 스타가 돼야 된다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후배가 잘하면 잘하지 못하게 밟는 경우도 많고.
◆ 이자람> 그런데 진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제가 가장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제가 다 행복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판소리가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는 장르가 되어야 저도 더 행복하고 그리고 더 많은 판소리 하는 동료들이 생겨야 저도 더 힘이 생기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이런 거더라고요. 그래서 긴 안목으로는 제가 계속 무대에 서는 것이 저 자신에게도 잠깐 숨 고를 시간도 필요했고 또한 제가 행복하려고 지금 작가와 작창가와 음악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소리꾼 이자람 씨, 공연 잘 하시고요. 든든하게 우리 판소리 무대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이자람>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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