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똑닮은 '사과하지 않는 자들'

2007년 2월 15일 미국 하원 아태소위원회 청문회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명의 한국 할머니와 네덜란드 출신 할머니 한 명이 등장했다.

청문회장 증인석에 앉은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와 얀러프 오헤른 할머니는 자신들의 칠팔십 년 평생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혔는지를 눈물로 절규했다.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3년 동안 일본의 성 노리개 노릇을 했고 하루에 4~5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했다"(이용수 할머니).

"1942년 16살 때 일본군들은 칼로 내 몸을 찌르는가 하면 콘돔을 끼지 않고 덤벼들었다. 지옥 같았다"(김군자 할머니).

"19세 때 일본군 수용소로 끌려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치욕을 씻으려 씻고 또 씻었다"(오헤른 할머니).

마이크 혼다 의원을 비롯한 미국 하원 의원 10여 명으로선 처음 듣는 일본군의 잔학상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청문회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위안부 결의안이 이국땅인 미국 의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2007년 7월 30일이었다.

일본이 그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질 않자, 미국 상하 양원은 이번에 일본의 위안부 결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2014년 미국 행정부 통합세출법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민주당 소속의 레인 에번스 의원은 지난달 25일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 등을 참석시킨 가운데 미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은 "마지막 소원은 일본의 사과"라고 입을 모은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본군 위안부 만행과, 이에 대한 사과를 외면하는 일본 행태를 증오하지 않는 국민은 없으리라 본다.

일본은 '양심'이란 단어를 고무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날려 보내버린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영토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양심적인가' 자문해본다.

독재정권 시절 저질러진 수많은 인권탄압, 민주인사 살인 사건은 차치하자.

지난 13일 내려진 두 건의 역사적 재판 결과에 대해서만이라도 연루된 관계자들은 최소한 '미안하다'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천 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부림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해 3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고, 1991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형을 산 강기훈 씨에 대해서도 무죄라는 법원의 재심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 폭압적인 조작을 자행했던 관료 출신들이 생존해 있고, 나아가 여전히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면 최소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강기훈 씨는 무죄 판결 이후 “오늘 재판을 통해 모두의 한이 풀리게 되길 바란다”며 “나를 수사했던 검사들 목소리를 듣고 싶다.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긴 판결문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이나 강기훈 씨가 무죄 판결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다 한들, 앗아간 그들의 젊은 꿈과 인생을 되돌리진 못한다.

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인권 유린에 대한 책임을 국가만이 져야 한다면, 과연 작금의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과 요구를 외면한 일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가해자 대열에 가세한 인사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세다. 인간의 양심은, 그들의 국가관은, 위민정신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23년간 처참하게 짓밟혀 간암 재발이란 병마와 싸우고 있는 강기훈 씨의 "한마디만 듣고 싶다"는 외침이 그들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가.

그들에게 진정 공직자로서의 소명의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나 한 것인가.

그저 군림할 뿐,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공복의 자세는 전혀 없다 해도 무방한 현실이다.

정론직필해야 할 언론도 마찬가지다. 강 씨와 재야단체들은 지난 1991년 김기설 씨가 분신 자살한 이후부터 "강 씨는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부 우익 언론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한 채 검찰과 사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기도 했다. 권력의 압살에 '공범'으로 기능한 셈이다.

당장 14일자 아침 보도와 칼럼들을 살펴봐도 '23년 전 권력의 편을 들어 일방적 보도를 했다'는 반성문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추구와 정의 실현, 권력 감시란 소명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우리 모두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도 내 눈의 들보를 놓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언론들에게도 "한마디만 듣고 싶다"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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