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 단경골계곡 가장 안쪽 외딴집에 여드레째 고립된 주민 이모(55·여)씨는 기자와 통화가 되자마자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씨가 사는 단경골계곡은 강릉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16㎞ 정도 떨어진 만덕봉 자락에 있다. 옛 지번으로는 언별1리 3반 일대.
현재 폭설로 길이 모두 끊겨 이 일대 4가구가 고립 상태지만, 버스 정류장에서도 외진 길을 따라 8㎞ 깊숙이 더 들어가는 이씨 집 주변은 현재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다.
1년 전, 이 깊은 계곡에 집을 지어 들어온 건 병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현재 혼자 힘겹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주민 이씨는 폐암과 간암 등을 앓는 중증질환자다. 힘든 수술과 항암 치료 등을 거치면서 불안장애와 공황장애까지 갖게 됐다.
이번 폭설로 일대가 완전히 고립되면서 시내에서 출퇴근하며 이씨를 돌보던 남편은 들어오지 못하고 이씨가 쓰러질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현재 집 거실 유리창 너머로는 집사방을 가로막은 새하얀 눈밖에 보이지 않는다. 눈이 집을 삼켜버린 것 같다.
집 바로 앞에 쌓인 눈도 하나 치우지 못해 문을 열어젖혀 바깥 상황을 살펴보기도 어렵다.
눈이 내린 지난 6일부터 하염없이 밖을 쳐다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밖에 있는 진돗개도 인적이 없으니 여드레 동안 한 번 짓지를 않는다.
이씨는 "혼자 고립되고 나서 무서워서 음식을 먹어도 체하고 손이 떨려 미칠 것 같지만, 신경정신과 약이 몇 알밖에 남지 않아서 아껴먹느라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어 눈물만 난다"고 말했다.
다행히 전화 연락은 가능해 남편과 다른 주민들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이라는 말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이 집에 모아둔 화목 보일러용 땔감은 이제 2∼3번 땔 정도 양밖에 안 남았다.
구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몰라 성치 않은 몸에 며칠째 전기장판만 켜고 최대한 옷을 껴입고 추위를 버티고 있다.
"3∼4일 전에 시청에 구조요청을 했는데 제설차를 보낸다고 했던가, 군인들이 나온다고 했던가. 아무튼, 이렇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요. 저 아래까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힘들다고…."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17일)까지는 남은 쌀과 고구마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17일부터 사흘간 다시 강원도에 폭설이 쏟아진다는 예보가 들려왔다.
최씨는 "약이라도 누가 갖다줄 수 있으면 참을 텐데 너무 힘들어요. 저 아래 혼자 사는 할아버지도 계시는데 그분도 잘 계신지 모르겠어요…."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강릉시 강동면에 따르면 언별1리 3반 지역은 170여㎝의 눈이 쌓여 현재까지 일반 차량은 물론 도보로도 전혀 진입할 수 없는 상태다.
마을 입구에서 4㎞ 거리에 70대 노부부와 80대 홀몸노인 가정 등 2가구가 고립돼 있고, 8㎞ 계곡 안쪽에는 이씨 집 등 2가구가 눈에 갇혀 있다.
강동면 주민센터 관계자는 "마을 입구에 중장비 3대를 투입해 쉴 새 없이 제설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 계곡 안쪽까지는 2∼3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