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그들은 왜 '쏘리'라고 말하지 않나?

"포괄적 사과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개별적 사과는 부적절"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13일 역사적인 재판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 '부림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해 3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고, 또 하나는 1991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형을 살았던 강기훈 씨에 대해 유서대필은 무죄라는 법원의 재심 판결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33년이 걸린 부림사건이나 22년이 걸린 유서대필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검찰은 여전히 항소할 것으로 보이고 당시 사건 수사관계자들은 지금도 유죄를 확신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영화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었던 사건 관련자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지만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지금도 법조계에서 정치권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그들은(당시 검찰이나 경찰, 법원 등) 왜 '쏘리'라고 말하지 않나?"라는 주제로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무죄가 선고된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와 어제 밤늦게 통화를 했다.

마음이 참 복잡한 것 같았다. JTBC '손석희의 뉴스9' 과의 전화인터뷰에서는 당시 사건 관계자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주면 안 되나?"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밤 10시쯤 통화를 하면서는 "사과를 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과할 마음이 없는데 사과를 하라고 할 생각도 없다"라고 했다가 "어떨 때는 사과를 받고 싶기도 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건 관계자들이) 미안하다고 하면 미워졌던 마음이 좀 풀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강기훈씨는 무죄가 선고될 당시의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면서 특히 검찰에 대해 "검찰로서 할일을 못했다. 공소유지를 하지 못했고 유죄를 규명하지도 못하면서 재심과정에서 항고 재항고를 거듭하고…. 법원도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하는데 3년 이상을 끌었고 그런 과정들이 생각나기도 했다"며 당시의 심정이 여러 가지가 얽힌 복잡했다고 말했다.

강기훈씨는 "검찰은 아마 관례대로 항소를 할 것"이라면서 "검찰의 그 항소가 한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강기훈씨가 이 말을 하는 건 암 투병을 했고 다시 재발해서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강기훈 씨는 건강이 어떻느냐는 질문에는 "건강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13일 재판에서도 재판부가 무죄 선고를 하면서 판결문을 줄줄이 읽어 내려갔을 뿐, 지난날 사법부의 과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재판부가 사과를 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강기훈 씨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재판은 사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며 "재판부가 유감을 표시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을 향해서도 "검찰이 당시 기억을 떠올려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로 나오는 부림 사건의 고호석씨는 "당시 고문이 공공연했다"면서 "사과를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가만히 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 부림사건도 무죄가 선고됐는데 당시 수사검사가 재판부를 비판했다는데?

= 부림사건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에서 근무했던 고영주 변호사가 부림사건 재심사건 무죄선고에 대해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으로, 사법부 스스로가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구금과 고문 등으로 피고인들 자백의 임의성을 의심한다'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법원에서 임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검찰조사에서의 진술이 임의성이 없다면, '나중에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검찰을 심판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좌경의식화 학습을 받은 사람들이 현재 중견 법관까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과거의 법관들이 현장에서 진술을 듣고 겪었던 것을 현 사법부가 자기 부정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서대필 사건의 수사검사들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가 꺼져있었다. 그렇지만 이들과 같이 근무하는 법조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아직도 유죄를 확신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 혹시 당시 사건과 관련해서 사과를 하거나 유감을 표명한 사람은 없나?

= 유서대필 사건이나 부림사건과 관련해서 사과나 유감을 표명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당시로 돌아가면 유죄를 확신한다고 얘기하는데 사과를 하겠나?

그렇지만 포괄적인 의미로 사과를 했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대법원에서는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분명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9월 26일이 사법60주년이었는데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기념사에서 "과거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성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하였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은 아니지만 재심 판결을 할 때 재판부에 따라 개별사건을 선고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언급을 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검찰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참으로 아쉽고도 안타깝다"는 말을 했는데 이걸 사과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사에 대한 검찰수장으로서의 첫 발언이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청문회 과정에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당연히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며 "검찰총장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라고 말했는데 6개월도 근무하지 못하고 찍혀내기 당했으니 앞으로 검찰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사과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들은 왜 '쏘리'라고 말하지 않는 거냐?

= 무죄선고가 난 뒤에 당시 검사로 재직했던 전직 검사 여러 명과 통화를 했다. 공안검사 출신도 여러 명이 있다.

이들에게 당시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검사가 사과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느냐? 라고 물으니까 대부분이 "개별 사건에 대해 개별검사가 사과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개별사건에 대해서 당시 기소해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가 재심에서 무죄가 났다고 해서 당시 수사검사 개인이 사과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면서 "수사 당사자들은 무죄가 났더라도 유죄라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검찰총장이 포괄적인 의미의 사과는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검찰이 인권옹호기관이면서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 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해 포괄적으로라도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안검사로 오랫동안 재직했던 한 법조인은 "기소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거나 사과를 하라는 건 온당치 않다. 왜냐하면 누가 맡았더라도 당시에는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면서 "기소를 검사 혼자 결정한 게 아니라, 부장도 있고 차장도 있고 검사장도 있고 대검도 있고 법무부도 있다"고 말했다. 이 법조인은 "당시 상황에서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학습하고 그 중 몇 명은 시위를 주도했다면 그 시대 분위기에서는 기소를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공안통 출신 법조인은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의식화 공부 한다는 자체가 쇼킹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사 개인의 판단이기 보다는 상부나 정부차원에서의 요구가 컸을 것"이라면서 "부림사건 피해자들도 시대의 희생양이고 당시 검사들도 어떻게 보면 그런 사건에 대한 기준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시대적인 흐름에 끌려갔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조인은 따라서 "당시 검사들의 결정이 당시의 기준 정부의 지침에 의한 것이니까 개인에게 사과하라는 건 적절치 않을 것이고 정부차원에서 실체를 부풀렸던 측면이 있는 만큼 법원처럼 포괄적으로라도 사과를 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사과를 할까?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의 검찰간부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다들 조심스러워 했다. 다만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무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어떤 방식이던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이 검찰관계자는 검찰총장이 포괄적으로라도 사과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는 질문에 "무죄가 확정된다면 총장이 코멘트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검찰이 사과를 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무죄선고에 불복해 항소나 상고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유서대필 사건이나 부림사건에 대해 항소할 것이냐? 는 질문에 "아마 항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 명백한 무죄가 아니기 때문에 항소할 가능성이 높고, 부림사건의 경우도 경찰에서의 불법구금이 있었지만 검찰에서의 자백이나 진술조서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항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검찰이 항소 또는 상고를 한다면 언제 재판이 끝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검찰의 포괄적인 사과를 듣기에도 많은 세월이 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서대필사건의 수사검사들이 지금까지도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데?

= 그렇다.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가 23년만이나 걸려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당시 강 씨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지금까지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잘나가고 있다. 대중가요 제목 같지만 이른바 '내가 제일 잘나가'인 것이다.

당시 주임검사가 신상규 검사였고 부장이 부장검사가 강신욱 전 대법관이었다. 전재기 서울 검사장, 정구영 검찰총장, 그리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씨였다.

그리고 당시 강력부 검사가 송명석, 안종택, 임철, 남기춘, 곽상도, 윤석만 등이었고 판사가 노원욱, 임대화, 부구욱, 박만호 윤영철 등이었다.

강기훈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이를 지휘했던 검사들은 노태우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까지 법조계와 정치권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대표적인 사람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대선과정에서 '초원복국'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거제에서 15~17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두 번째 비서실장을 맡아 '기춘 대원군'으로 불리며 정권의 최고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당시 강력부장 검사이던 강신욱 전 대법관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서울고검장을 거쳐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2007년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캠프 법률특보단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주임검사인 신상규 변호사는 이후 서울지검 특수2부장, 서울지검 3차장,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광주고검장 등 검찰 주요 요직을 거친 후 2009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얼마 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법률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남기춘 검사도 서울지검 특수2부장 서산지청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해 울산지검장과 서울 서부지검장을 지낸 뒤 변호사로 개업했고 윤석렬 여주지청장 징계사건의 법률대리인을 맡기도 했으며 박근혜 대선캠프의 열린검증소위원장을 맡았다. 곽상도 검사는 대구지검 공안부장, 수원지검 특수부장, 서울지검 특수3부장을 거친 뒤 대구서부지청장을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1심 재판부 판사나 강 씨의 최종심을 맡은 대법관도 이후 법원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1심 재판장이었던 노원욱 판사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고, 항소심 재판을 맡은 임대화 당시 서울고법 형사2부 부장판사는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제주지법원장, 춘천지법원장, 특허법원장 등을 역임한 후 변호사로 개업했다. 항소심 재판부 배석판사였던 부구욱씨는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한 뒤 부산 영산대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로스쿨대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1992년 7월 강 씨의 유죄를 최종 확정한 대법원 재판부 주심이었던 박만호 변호사는 2002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대법관으로 재판부를 구성했던 윤영철 대법관은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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