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폼페이' 사상최대 화산폭발 한복판에 놓인 고대도시로의 시간여행

옛 인류 삶 철저한 고증으로 오롯이 복원…화산폭발·쓰나미 효과 압권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옷가지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린 불길은 산소 부족으로 인해 금세 사그라들었다. 돌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높이가 2미터 가까이 되는 고운 재가 소리 없이 내려와 도시를 덮쳤고, 변을 당한 희생자들의 본이라도 떠놓은 듯 그들의 몸을 감쌌다. 이 잿더미는 그대로 굳어졌으며 그 위에 또 다시 경석(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굳어진 돌)이 떨어졌다. 본을 뜬 공간 안에서 시체들은 썩어갔고 수백 년이 지나면서 그곳에 도시가 존재했다는 기억도 함께 썩어갔다. 폼페이는 그렇게, 완벽하게 본이 떠진 텅 빈 시민들의 도시가 되었다. 그 모습을 재현해보면 서로 껴안고 있거나 혼자 움츠린 모습으로, 옷이 완전히 벗겨져 날아갔거나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져 있었고, 부질없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움켜잡고 있거나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 로버트 해리스 저 '폼페이'(알에이치코리아) 452쪽
 
서기 79년 8월2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3㎞ 떨어진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폼페이를 내려다보는 베수비오 화산이 거센 불길을 토해냈다.

원자폭탄의 10만 배에 달하는 힘을 지닌 이 폭발로 초당 1.5톤에 달하는 화산재와 경석이 쏟아져 내렸고, 화산 구름이 태양을 가려 도시를 완벽한 어둠 속에 몰아넣었으며, 해변에는 쓰나미가 몰아쳤다. 도시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불에 타 죽거나 질식사했고, 해일에 떠내려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화산 폭발로 단 18시간 만에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도시 폼페이, 이곳은 1592년 우연히 발견돼 다시 세상의 빛을 본다.


당시 폼페이 사람들은 화산재 속에서 인간화석이 됐다.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아이를 끌어안은 어머니, 입을 틀어막은 채 움츠린 소년, 서로의 품에서 죽어간 연인, 발버둥을 치다가 굳어진 사람 등 다앙한 인간 군상을 오롯이 간직한 채 말이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은 화산재가 휘날리는 가운데 이 인간화석의 주위를 맴도는 영상으로 시작해 화산 폭발 이틀 전의 화려한 고대 도시 폼페이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그곳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의 풍경이 자리해 있고, 최후의 순간 인간으로서 빛나는 가치를 찾아낸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릴 적 로마군에 의해 가족은 물론 부족까지 모두 잃은 노예 검투사 마일로(캣 해링턴)는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에밀리 브라우닝)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도시의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의 대규모 검투 경기에 동원된 마일로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로마의 상원의원 코르부스(키퍼 서덜랜드)를 발견한다.

더욱이 코르부스는 카시아에게 정략 결혼을 강요하고 마일로는 부모의 복수와 연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검투에 나선다.

그 순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을 시작하고, 쏟아지는 화산재와 용암 탓에 폼페이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인다.
 
이 영화의 이야기 흐름은 기존 재난 영화와 비교했을 때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자기 욕망에 충실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한 고귀한 희생의 길을 선택한다.

그 안에서 싹트는 사랑과 우정도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코드다.

고대 그리스·로마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도 '글레디에이터'(2000)를 필두로 최근 10년 새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여기서 차별성을 찾기도 어렵다.
 
관객들이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러한 설정 안에서 찾아낸 이 영화의 미덕은 판타지를 배제한 채 그 시대 인류의 삶을 철저한 고증으로 오롯이 되살렸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첨단 장비를 활용해 실제 폼페이 유적과 지형을 연구하고, 유물로 가득찬 박물관과 방대한 문서를 조사하는 등 최근 수십 년간 학자들이 발견한 폼페이에 관한 모든 것들을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폼페이가 번성했을 당시에는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과 관공서, 체육관, 술집, 빵집, 공중목욕탕은 물론 귀족들의 별장 등 호화 시설이 즐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제작진은 6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이들 시설을 30여 개 세트로 재현해냈다.

세트에 깔린 도로용 자갈도 실제 폼페이의 것을 따르고자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니, 그 노력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화산 폭발과 쓰나미로 쑥대밭이 되는 도시를 표현한 특수효과는 압권이다. 특히 화산이 토해내는 불덩이를 피해 항구로 몰려간 사람들이 다시 거대한 해일을 만나 도망칠 때 커다란 배가 떠밀려 오는 시퀀스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긴박함을 준다.

이 영화는 3D로 촬영됐는데, 언론시사에서는 배급사 등의 사정으로 일반 영화로 상영됐다. 화산 폭발, 쓰나미, 지진이 도시를 삼키는 현실감 넘치는 효과를 직접 확인할 수 없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 전 화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의 한복판에 놓였던 고대도시로의 시간여행을 선사하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15세 관람가(예정), 105분 상영,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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