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단거리의 살아 있는 역사 이규혁(36, 서울시청). 지난 1991년 겨우 13살의 나이에 가슴에 달았던 태극마크. 13일(한국 시각) 이규혁은 무려 24년이나 꿋꿋하게 지켜온 자긍심을 일단은 내려놓았습니다.
소치올림픽 남자 1000m 21위, 30년 현역 생활의 마지막 온 힘을 짜내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10일 500m 18위까지 이규혁은 '올림픽 무관의 제왕'으로 남았습니다. "200m를 16초2로 마쳤을 때 '내게도 올림픽이 오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 끝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이규혁은 30년 현역을 마친 자신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죠. 올림픽 메달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도전도 많이 했는데 결국엔 좀 많이 부족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신기록(1997년 1000m 1분10초42)을 세우고 4번의 세계선수권 우승, 14번의 월드컵 정상. 그 화려한 이력서에서 6번이나 출전한 올림픽의 성과를 적는 칸만 비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수 생활이 그렇게 평가되기만 하면 될까요? 단순히 30년 선수 생활을, 20년 6번의 올림픽 도전을 해온 것만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끝나서는 안 될 겁니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정상급 실력을 십수 년이나 지켜오며 한국 빙상의 위상을 끌어올려온 공로는 '명예의 전당' 급입니다.
소치올림픽 남자 500m를 제패한 미헐 뮐더르조차 대회 프로필에 이규혁을 우상으로 적었습니다. 소치 대회 금메달을 휩쓸고 있는 빙상 최강국 네덜란드 국적의 선수가 말입니다. 세계 빙상계에서 이규혁의 위상을 알 만한 대목입니다.
자신을 '올림픽 메달 없는 선수'로 냉정하게 평가한 이규혁도 자신이 일궈온 개척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 선수가 저를 우상으로 꼽았다는 걸 기사로 보고 알았어요. 그 나라 선수들 중에도 유명한 선수도 많고 왜 나를 우상으로 썼을까. 아마 4년 전에 같이 경기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사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워낙 콧대가 높아요. 동계 강국이고 자부심이 대단하죠. 어렸을 때는 제가 어느 정도 무시도 당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위치에 한국 선수들이 이 정도 대접을 받는다는 것, 네덜란드라는 강국이 우리나라를 존중해주는 것은 선수로서 가장 큰 뿌듯함이죠."
이규혁은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적잖은 선수들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20년 동안 세계 빙속계를 이끌어온 베테랑에 대한 예우에 이규혁도 인터뷰 중간 답례를 했습니다. 마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이 결전장으로 걸어갈 때 동료들이 일어나 경의를 표하는 장면처럼 말입니다. 경기 후에는 외신 기자들과 따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은 단거리 에이스 모태범 외에는 모두 이규혁보다 기록이 뒤졌습니다. 500m에서 김준호(19, 강원체고)가 21위, 또 다른 베테랑 이강석(29, 의정부시청)도 22위에 머물렀습니다. 1000m에서도 김태윤(20, 한국체대)도 30위에 그쳤습니다.
이에 맏형은 후배들을 위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실 후배들을 위해 올림픽 출전을 양보하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후배들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죠. 저도 500m는 포기하고 1000m만 출전하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되더라고요."
20년 이상 태극마크를 달고 빙상 최강국 네덜란드의 단단한 자존심을 녹여왔던 사나이 이규혁, 그의 30년 레이스는 이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스피드스케이팅 열정은 계속됩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올림픽 메달의 꿈. 4년 뒤 평창에서, 혹은 그 이후 지도자로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