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역내의 양대 동맹인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를 놓고 사활을 건 외교전을 펴는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오바마 2기 첫 아시아행(行)인 이번 순방은 작년 10월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 때 순방이 취소된 동남아 국가들과 3년 6개월만에 국빈방문을 요청한 일본이 애초 방문대상이었다.
물론 한국도 방문을 희망했지만 오바마 1기때 이미 세차례나 방한한 적이 있어 '순방 리스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이 출범한 지난해 초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 외교전을 펴왔다.
미·일동맹에 기대어 역내 발언권을 강화하고 안보역량을 확장하려는 일본으로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만한 '외교 이벤트'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방일의 상징성을 최대한 살린다는 차원에서 4월 20일∼23일 3박 4일간 체류하는 국빈방문을 구상하고 이를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타진해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기로 한·일간 과거사 외교전이 격화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워싱턴 내에서 고조되는 대일 비판여론에 힘입어 한국은 순방대상국에 포함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미국의 입장은 미묘했다.
한국을 '바이패스(bypass)'할 경우 현재의 과거사 갈등국면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것처럼 국제사회와 역내 국가에 비쳐질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연구원 등 워싱턴에서 유력한 전직 관리 출신들이 "한국을 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시진핑 방한' 변수도 등장했다.
시 주석이 이달초 연내 방문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건너뛴다면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거사 갈등국면이 장기화되면서 한국과 중국이 외교적으로 '밀착'되는 흐름을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중국 견제의 축으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만 방문하고 한국을 지나칠 경우 벌어질 후폭풍이 만만치 않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말 연초 윤병세 외교장관과 김규현 차관(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잇따라 방미해 백악관과 국무부를 상대로 '고공전'을 펴고 주미 한국대사관이 다방면으로 외교전을 전개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서는 일본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한국을 추가하는 식으로 최종 조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전포인트는 앞으로 한·일간의 세부일정 조정이다.
일본은 최근 2박 3일간의 국빈방문을 공식 요청한 상태였다.
일정이 1박 2일로 단축된 만큼 나름의 내용성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시간을 담기 위한 `지혜찾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빈방문의 격을 유지하려면 ▲아키히토 일왕 행사 참여와 ▲수도인 도쿄 이외의 지역 방문의 요건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일왕 행사에만 참석하는 선에서 국빈방문의 내용상 의미를 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본으로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집단자위권 행사 등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것을 최대한 받아내는 '실리 챙기기'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에서의 체류일정은 1박 2일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촉박한 일정이나 경호여건 등을 감안해 서울에만 들러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하는 선에서 방문일정이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한이 사실상 임기내 마지막 방한일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방한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일정이 확정된 것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본격적으로 '대화'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주문에 따라 한·일 양국이 대화테이블에 나서는 모양새를 갖출 가능성은 있지만 핵심은 일본이 얼마나 진정성있는 태도변화를 보이느냐이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끌어내느냐가 과거사 외교전의 또다른 중요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