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먼나무

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먼나무'에 대해서 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를 통해 알아본다.

먼나무. (사진=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입춘추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며칠 추워지더니 오늘은 비 날씨의 도심지와는 달리 한라산에는 많은 눈이 내려 온통 눈 세상입니다. 한동안 겨울답지 않은 따스하고 건조한 날씨로 올해도 작년처럼 가뭄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번 내린 눈비로 겨울가뭄이 많이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지대 자생지에는 복수초는 물론이고 변산바람꽃, 새끼노루귀, 수선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서쪽 곶자왈에는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나무인 길마가지나무와 꽃향기 좋은 백서향도 서서히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이번 눈으로 잠시 멈칫거리겠지만 며칠 있으면 다시 화사한 모습으로 봄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심지는 겨울색으로 완연합니다. 단지 간간이 열매를 단채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뜨일 뿐입니다. 그런 나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름도 재미있는 먼나무입니다. 꽃이 없는 겨울에 꽃처럼 예쁜 열매를 가진 먼나무는 언제 봐도 매력적입니다. 물론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빨간 열매를 잔뜩 달고 있는 피라칸다라는 나무도 거리 곳곳에 심어져 있지만 먼나무가 더 늠름하고 더 고상하고 정겹게 보이는 것은 아마 우리의 산야에서 자라는 나무라 그럴 것입니다. 누구든 먼나무를 알려줄 때 '이게 뭔 나무지' 라는 질문과 함께 정답은 '먼나무다'라 하면 초보자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곤 합니다. '뭐 이런 이름을 가진 나무가 다 있을까' 싶기도 하겠습니다.
 
먼나무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몇 가지 전해지고 있지만 모두 확실한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우선 '겨울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먼나무의 아름다움은 멀리서 봐야만 느낄 수 있다'는 데서 먼나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봐도 먼나무 열매의 아름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나무열매가 너무나 멋져서 '멋스런 나무'라는 뜻에서 '멋나무'인데 먼나무가 되었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먼나무와 비슷한 감탕나무 보다 먼나무의 잎자루가 길어서 '잎이 먼 나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네 번째로 제주도에서는 먼나무를 '먹낭' 또는 '먼낭'이라 하는데 '먹'은 '검다'라는 뜻의 제주도식 표현이며 나무줄기가 검어 '먹'이 '먼'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주가 고향이어서 그런지 마지막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먼나무는 이처럼 제주지방명이 표준명이 됐다고 할 만큼 제주도에서 많이 보이고 전라남도 보길도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탕나무과의 키가 큰 늘푸른나무로 10m 정도 자라며 나무줄기는 비교적 검은 느낌을 줍니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기로 달리는데 대체로 두꺼운 듯합니다. 꽃은 빠르면 5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6월까지 볼 수 있습니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에 암꽃과 수꽃은 서로 다른 나무에서 달리고 각각 새로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자주색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꽃 색도 연하고 크기도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먼나무가 늘푸른나무라고 한다면 잎을 일 년 내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어느 순간 잎을 모두 떨구었다가 다시 새로운 잎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나무. (사진=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먼나무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겨울철 열매에 있습니다.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드러내는 빨간색 열매는 지금이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싱싱해 보입니다. 이것은 먼나무 나름의 씨앗 퍼트리기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열매는 꽃이 없는 겨울의 황량함을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더욱이 다른 나무에 비해 유독 빨갛고 많은 열매를 겨울 내내 달고 새들을 유혹합니다. 새들이 열매를 보고 날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동안 먼나무는 새들의 훌륭한 식량창고 노릇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먼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새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새들은 열매를 먹고 먼 곳으로 가서 씨앗을  배설을 할 것이며 그곳에서 먼나무는 다시 싹을 틔울 것입니다.
 
겨우내 볼 수 있는 먼나무의 열매는 새들에게 겨울철 식량이 되지만 너무나 예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거리의 조경수가 됩니다. 기후가 예전보다 따뜻해진 이유 때문인지 이제는 제주뿐만 아니라 이제는 부산의 거리에서도 전남의 광주의 거리에서도 가로수로 가꾸어진 먼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원이나 일반 가정집에도 정원수로 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먼나무의 빨간 열매가 금전운을 좋게 한다 하여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서귀포의 옛 시청 마당에는 큼지막한 먼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어서 제주도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기도 했었는데 제주비극의 역사인 제주4.3관 관련이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9년 무장대를 완전히 토벌한 기념으로 한라산에 자라는 것을 당시 토벌대의 군주둔지였던 서귀포시청에 옮겨 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4.3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몇 년 전 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민에게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역사이지만 기념물로 남겨놓아도 나름대로 충분한 교육적 가치가 있을 텐데 아쉬운 일입니다.

모든 꽃과 나뭇잎이 지는 겨울은 황량함이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 거리를 빨간색으로 채색하여 겨울의 도심지를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먼나무입니다. 그리고 새들에게는 더없는 식량창고 역할을 하고 있으니 먼나무는 이리저리 겨울철에 가장 돋보이는 나무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분들도 시내를 걷다가 먼나무를 보면 열매에 한번쯤 눈 맞춤 하면 좋겠습니다. 그 조차도 우리나무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꽃소식에 마음은 바쁘지만 이번 휴일에는 산이 아닌 시내로 나가서 매혹적인 먼나무 열매를 보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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