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도심지는 겨울색으로 완연합니다. 단지 간간이 열매를 단채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뜨일 뿐입니다. 그런 나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름도 재미있는 먼나무입니다. 꽃이 없는 겨울에 꽃처럼 예쁜 열매를 가진 먼나무는 언제 봐도 매력적입니다. 물론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빨간 열매를 잔뜩 달고 있는 피라칸다라는 나무도 거리 곳곳에 심어져 있지만 먼나무가 더 늠름하고 더 고상하고 정겹게 보이는 것은 아마 우리의 산야에서 자라는 나무라 그럴 것입니다. 누구든 먼나무를 알려줄 때 '이게 뭔 나무지' 라는 질문과 함께 정답은 '먼나무다'라 하면 초보자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곤 합니다. '뭐 이런 이름을 가진 나무가 다 있을까' 싶기도 하겠습니다.
먼나무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몇 가지 전해지고 있지만 모두 확실한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우선 '겨울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먼나무의 아름다움은 멀리서 봐야만 느낄 수 있다'는 데서 먼나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봐도 먼나무 열매의 아름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나무열매가 너무나 멋져서 '멋스런 나무'라는 뜻에서 '멋나무'인데 먼나무가 되었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먼나무와 비슷한 감탕나무 보다 먼나무의 잎자루가 길어서 '잎이 먼 나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네 번째로 제주도에서는 먼나무를 '먹낭' 또는 '먼낭'이라 하는데 '먹'은 '검다'라는 뜻의 제주도식 표현이며 나무줄기가 검어 '먹'이 '먼'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주가 고향이어서 그런지 마지막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먼나무는 이처럼 제주지방명이 표준명이 됐다고 할 만큼 제주도에서 많이 보이고 전라남도 보길도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탕나무과의 키가 큰 늘푸른나무로 10m 정도 자라며 나무줄기는 비교적 검은 느낌을 줍니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기로 달리는데 대체로 두꺼운 듯합니다. 꽃은 빠르면 5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6월까지 볼 수 있습니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에 암꽃과 수꽃은 서로 다른 나무에서 달리고 각각 새로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한 자주색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꽃 색도 연하고 크기도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먼나무가 늘푸른나무라고 한다면 잎을 일 년 내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어느 순간 잎을 모두 떨구었다가 다시 새로운 잎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겨우내 볼 수 있는 먼나무의 열매는 새들에게 겨울철 식량이 되지만 너무나 예쁜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거리의 조경수가 됩니다. 기후가 예전보다 따뜻해진 이유 때문인지 이제는 제주뿐만 아니라 이제는 부산의 거리에서도 전남의 광주의 거리에서도 가로수로 가꾸어진 먼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원이나 일반 가정집에도 정원수로 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먼나무의 빨간 열매가 금전운을 좋게 한다 하여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서귀포의 옛 시청 마당에는 큼지막한 먼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어서 제주도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기도 했었는데 제주비극의 역사인 제주4.3관 관련이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9년 무장대를 완전히 토벌한 기념으로 한라산에 자라는 것을 당시 토벌대의 군주둔지였던 서귀포시청에 옮겨 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4.3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몇 년 전 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민에게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역사이지만 기념물로 남겨놓아도 나름대로 충분한 교육적 가치가 있을 텐데 아쉬운 일입니다.
모든 꽃과 나뭇잎이 지는 겨울은 황량함이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 거리를 빨간색으로 채색하여 겨울의 도심지를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먼나무입니다. 그리고 새들에게는 더없는 식량창고 역할을 하고 있으니 먼나무는 이리저리 겨울철에 가장 돋보이는 나무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분들도 시내를 걷다가 먼나무를 보면 열매에 한번쯤 눈 맞춤 하면 좋겠습니다. 그 조차도 우리나무를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꽃소식에 마음은 바쁘지만 이번 휴일에는 산이 아닌 시내로 나가서 매혹적인 먼나무 열매를 보고 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