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모(53)씨는 2년 전 서울에서 귀향해 이곳 양계농장을 임대해 살았다. 비록 빌린 농장이지만 농가는 그의 보금자리이자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요양원 같은 곳이었다.
그는 오랜 기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미혼이었기에 어머니는 곁에 있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한 달에 30만∼40만원의 고정적인 수입만 생긴다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실 계획이었다.
이런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6일 새벽 농장은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술에 취한 봉씨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농약을 들이킨 것.
그는 음독하기 전 서울에 사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봉씨 조카는 즉시 부안에 사는 봉씨 누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누나와 매형이 병원으로 봉씨를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 조사 결과 봉씨는 AI 발생 이후 토종닭 출하와 입식을 하지 못하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봉씨 형(55)은 "동생이 '며칠 전에도 토종닭을 제때 출하하지 못해 망하게 생겼다'며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했다"면서 "전통시장에서도 생닭 거래가 금지되는 바람에 동생이 오랫동안 닭을 내다 팔지 못했다"고 비통해했다.
봉씨의 친구는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그가 이번에 AI까지 터지자 무척 힘들어했다"면서 "게다가 지난달 말 농가 임대계약까지 만료돼 이곳을 떠날 처지였다"고 말했다.
봉씨는 농장주에게 연 1천300만원을 주고 닭 3만7천여 마리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쾌활한 성격은 아니었어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효자 농민은 AI 여파를 넘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극단적 방식으로 정리했다.
농가 곳곳에는 석회가루가 뿌려져 있었으며 어머니는 아직 비보를 모른 채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