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산발 테러' 들불처럼 활활…지구촌 몸살

1∼2월 ISIL 등 활개…알카에다 동조 불구 분권형 활동

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알카에다와 느슨히 연계된 '분권형' 테러 조직의 공격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이 알카에다의 창설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지 3년 가까이 되지만 기대와 달리 '테러 종언'은 결국 헛구호에 그친 셈이다.

특히 테러 단체들이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경 없는' 조직원 포섭에 나서면서 유럽 등 서방에서는 '테러 불길이 번진다'는 우려가 커가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5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그린존' 주변에서 폭탄 테러가 잇따라 20여명이 숨졌다. 그린존은 정부 청사가 밀집된 최고 보안 지역이다.

이번 테러는 조직적 타격과 대담성 등으로 볼 때 알카에다 연계 조직의 소행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재 가장 악명이 높은 알카에다 연계 세력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기반을 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다. ISIL은 올해 1월1일부터 지금껏 중동 지역에서 최소 5건의 대형 폭탄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3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ISIL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공격이 집중돼 수십명이 숨졌다. ISIL은 이달에 팔루자 등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州) 일부를 점령, 독립 이슬람 국가를 선포해 현지 당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다.

ISIL은 시리아 내전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불사하는 호전성 탓에 같은 반군 진영의 원성을 샀고, 현재는 정부군뿐만 아니라 다른 반군과도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내분으로 지금껏 최소 2천300명이 숨졌다.

◇ 아프리카·파키스탄·중동 등 테러 속출

아프리카의 알카에다 연계 단체인 알샤바브(소말리아)와 보코하람(나이지리아)도 연초 기세가 등등하다.

작년 9월 케냐 나이로비의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서 인질 학살극을 벌인 알샤바브는 올해 1월1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한 고급 호텔에서 폭탄을 터트려 11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코하람은 지난달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폭탄 공격 2건의 배후로 추정된다.

알카에다의 오랜 우군인 탈레반도 올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8∼9건의 테러 공격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알카에다 연계 세력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의 국방정책 연구소인 제임스타운 재단에 따르면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지난달 14일 '방글라데시 이슬람 세력이 세속주의 정부에 맞서 봉기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올해 1월5일 총선 정쟁을 계기로 힌두교 등 타 소수종파를 노린 이슬람 극렬 단체의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러시아 이슬람 반군이 알카에다 깃발을 배경으로 소치 동계 올림픽에 대해 테러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테러가 가장 잦았던 국가는 ISIL가 활개치는 이라크로 5일 바그다드 그린존 공격까지 사례가 15건이 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7건의 참사가 발생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도 테러가 5건씩에 달했다.

◇ 인터넷으로 퍼지는 '다운로더블' 테러

테러 단체는 인터넷과 교육을 통해 동시 다발적으로 국외 '테러 수출'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 일부 반군이 유럽 젊은이들에게 유튜브 등으로 극단주의 사상을 주입, 현지 참전을 유도하고 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이렇게 시리아로 건너간 유럽인이 1천200명을 넘었다면서 참전한 이들이 귀국해 EU에서 유사 테러를 촉발할 수 있다고 최근 성명을 냈다.

호주에서는 시리아의 알카에다 연계 반군이 호주인 수십 명을 포섭해 전문 캠프에서 '서구형 테러리스트'로 훈련하려 했다는 의혹이 이달 초 제기돼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경을 넘는 극단화 물결을 '다운로더블(downloadable) 테러리즘'으로 설명한다. 디지털 음악을 내려받기(다운로드) 하듯 누구나 온라인으로 극단주의 선전물과 폭탄 제조법을 구해 테러범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작년 4월 미국 보스턴에서 일어난 마라톤 테러도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압력솥 폭탄' 제조법을 익힌 미국 이민자 형제의 소행이었다.

◇ 알카에다와는 사실상 다른 조직

많은 테러 단체들은 알카에다의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따르지만 특정 중앙 조직의 지시 없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알카에다 연계'란 말조차 애매할 경우가 많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빈 라덴 등 알카에다 지도부를 대부분 제거한데다 애초 알카에다 자체가 지역 조직들이 모인 '풀뿌리 네트워크'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측과 척결이 어렵다.

예컨대 ISIL은 시리아 반군과 유혈 충돌을 거듭해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에게서 '우리 조직이 아니다'는 선언까지 받았다.

알샤바브도 일관된 목표가 없고 부족 간 이해관계나 현지 민족주의 등에 따라 행태가 바뀔 때가 많다고 미국 국립대테러센터(NCTC)는 분석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중동정치학)는 "알카에다 '연계'(linked)란 개념은 대부분 이념 측면에서 느슨히 연관됐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라면서 "과거 미국 등 각국이 테러 위협을 과장하려고 모든 테러를 알카에다 조직의 소행으로 주장하던 것이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 미국도 '중앙타격' 방식서 사례별 대응 전환

중앙 통제 없이 벌어지는 산발 테러에 미국도 정책을 바꿨다.

과거 '테러와의 전쟁' 시절 알카에다 수뇌부 제거에 집중하던 '중앙 타격' 모델을 버리고 각 지역에 따라 무인기 정밀 폭격이나 외교 등 다양한 해법을 좇기로 한 것이다.

실제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국이 앙숙 이란과 과감히 화해를 추진하는 행보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견제하는 계산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이란은 시아파 맹주라는 위상 탓에 수니파 탈레반과 오랜 적대 관계였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란과 함께 탈레반 테러를 억누르고 아프간 안정화를 꾀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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