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동굴에서 수도를 하던 고승이 고행을 끝냈다. 그가 동굴을 나오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고승으로부터 한마디 듣기 위해서였다. 오랜 시간 동굴에 있었던 탓일까. 고승의 피부는 허옇고, 광대뼈는 움푹 들어갔으며, 입술은 파랬다. 하지만 눈빛만은 빛났다. 기자들이 고승에게 말을 걸었다. "스님. 속세의 중생들에게 깨달은 것을 한마디 해주십시오." 요청이 쏟아지자 스님이 입을 열었다. "심조불산 호보연자心操不山 互步緣慈." 기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스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심조불산 호보연자."
기자들은 고승이 남긴 한마디에 깊은 깨달음을 얻는 듯했다. 글자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여러 번 읊으니 더욱 오묘했다. 다음날 모든 언론사가 고승의 한마디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독자들은 고행수도를 한 스님의 말을 놓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고승을 다시 찾았다. "스님 지난번에 말하신 '심조불산 호보연자'는 무슨 뜻입니까?" 고승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정 그렇게 궁금하다면 나를 따라오시오." 기자들이 도착한 곳은 스님이 '심조불산 호보연자'를 말한 장소였다. 스님이 기자들에게 물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기자들이 사방을 둘러봤다. 저 멀리 산중턱에 글자 몇개가 눈에 들어왔다. 산에 세워진 입간판이었다. 스님이 다시 기자들에게 말했다.
"입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어보시오." 기자들이 눈을 크게 뜨며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자연보호 산불조심." 고승이 나직하게 말했다. "나 같은 미련한 중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할 말은 없는데 자꾸 청하니 눈에 보인 것을 뒤집어 읽은 것뿐입니다."
이유를 분석했다. 천연두에 걸린 소는 고름을 내뿜는데, 이 고름이 소젖을 짜는 사람에게 전염됐다. 그런데 사람의 몸에 들어온 고름 안에는 소의 항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제너가 인류사에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믹서기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유리컵 밑에는 날카로운 모터와 칼날이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리컵에 재료를 넣다가 손을 베기 일쑤였고, 유리컵을 씻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를 한방에 해결한 믹서기가 등장했는데, 그 형체가 단순했다. 유리컵, 모터, 칼날을 분리해 외부에 달아 놓은 것이다.
어려운 일은 순서대로만 하려고 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럴 땐 과감하게 뒤집어야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꼬인 것이 보인다. 얽히고설킨 것을 풀다 보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혹시 어려운 일과 마주하고 있는가. 살짝 뒤집어보라.
김우일 글로벌대우자원개발 회장 wikimokg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