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감의 '증거인멸'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멸된 증거의 구체적인 내용이 특정돼야 한다는 변호인 측 의견과 증거인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검찰 측 의견이 맞서는 상황에서, 법원 판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박 경감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박 경감의 변호인은 "검찰이 (삭제됐다는) 문서 개수나 내용을 특정하지 않아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증거가 김용판 전 서울청장 사건과 관련없는 증거임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검찰이 제대로 입증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증거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삭제된 증거를 복구해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프로그램을 실행한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맞섰다.
'증거인멸'의 증거가 '복구 불가능한 삭제 파일' 자체여서 혐의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들은 범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삭제된 프로그램을 복구할 수 없도록 만든 행위 자체가 있었는지를 우선 따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형법 제155조는 증거인멸죄에 대해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일 운전 중 신호위반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친구가 피고인을 위해 CCTV를 없앴다면 CCTV의 내용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판사도 "증거의 성격 자체는 '증거인멸죄' 성립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죄의 성립 자체를 떠나 인멸됐다는 증거 자체가 아예 사건 내용과 관련없는 것은 아닌지 보기 위해서라도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박 경감은 지난해 5월 검찰의 서울청 압수수색 과정에서 업무용 컴퓨터의 기존 삭제파일을 영원히 복구하지 못하도록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현재 박 경감 외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전·현직 간부 2명,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씨와 정모씨가 각각 국정원 관련 사건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18일 박 경감에 대한 선고에 앞서 6일 오후 2시 김 전 청장에 대한 판결 선고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