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프랑스 만화제서 문화 힘으로 진실지켜 감동"

앙굴렘 만화제에 동료와 일본군 위안부 소재 작품 출품

"만화라는 문화의 힘으로 진실을 지켜냈다는 점이 감동이었습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일본군 위안부 한국만화기획전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축제 기간인 나흘 동안 1만7천여명(한국만화영상진흥원 추산)이나 한국만화기획전 '지지 않는 꽃' 전시장을 찾았다. 일본 측의 집요한 기획전 취소 방해 공작이 맞물리면서 세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됐다.

전시에는 이현세, 박재동, 오세영, 김광성, 김금숙, 신지수 등 유명 만화가가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

현지에서 사인회 등을 하고 돌아온 박재동 화백은 4일 "전시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의 힘 때문"이라며 "특히 만화로 사람의 감동을 끌어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감동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무척 강하다"며 "머리로만 받아들이면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할머니들의 아픔이 만화 같은 이미지로 와 닿으면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박 화백은 프랑스 앙굴렘 만화제 조직위의 태도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에서 민간인 1만2천여명이 한국만화기획전을 취소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일본 만화계는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왜곡한 작품을 전시하려다가 부스를 철거당하기도 했다.

박 화백은 "프랑스 만화계에서 일본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탄원서 규모 등을 생각하면 조직위가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는데 그게 프랑스 지성의 힘이 아닐까"라며 "조직위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어떻게 정치적이냐. 역사를 왜곡한 게 오히려 정치 행위'라는 태도를 보였는데 멋졌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생생하게 접한 그는 "사람들이 소감을 남기는 벽 공간이 마련됐는데 금세 빡빡하게 글이 가득 찼다"고 덧붙였다. 소감 글에는 '이런 일이 있었던 줄 몰랐다' '충격적이다' '마음이 아프다'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박 화백의 설명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사만화가인 박 화백은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분임이'라는 단편 만화를 그려 신문에 연재하는 등 전쟁으로 인한 여성피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둬왔다.

이번 전시에는 '끝나지 않는 길'이라는 작품을 냈다.

가로 2m에 세로 20㎝ 크기로 오른쪽 끝에 살구꽃 등이 핀 마을이 그려졌고, 마을에서 뻗어나온 길이 어두운 색의 공간을 지나쳐 왼쪽 끝으로 이어진다. 왼쪽 귀퉁이에는 한복을 입은 소녀가 서서 울고 있다.

그는 "평소 이런 내용을 담은 가로 20m 이상의 매우 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전시장 여건이 안 돼 그림 크기를 줄였는데 할머니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위로받지 못한 소녀가 울고 있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박 화백은 "우리 민족의 마음에도, 세계 인류의 마음속에도 아직 울고 있는 소녀가 있다"며 "모든 이들이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할머니들과 공감해서 이 길이 끝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제 속에서 전시가 열리자 프랑스의 다른 지역이나 중국, 한국 지자체 등에서도 전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박 화백은 "순회 전시전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며 "작품을 책으로 내는 작업도 추진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아픔과 인생과 관련된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퉁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며 "인류의 기본권이나 인간 본연의 입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며 "일본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느냐'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의 아픔을 치료하고 치유해야 일본과의 우정도 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교수인 박 화백은 친구인 이상석 씨와 함께 '교단일기'를 주제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 마을 만들기 등에 대한 책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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