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에 대한 평가 후세를 기다린다"

'숭례문 세우기' 발간

"2009년부터 시작한 숭례문 복구에 대한 나의 글쓰기가 이제 막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보려 한다. 그러나 '부실 복구'라는 딱지가 숭례문 용마루 위에 큼지막하게 씌워진 지금, 책을 내는 내 심경은 결실을 보는 뿌듯함보다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또 다른 숙제를 짊어진 느낌이다. 50년 후, 100년 후에 내려질 숭례문 복구에 대한 평가를 기대할 따름이다."

최종덕(55)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은 교육파견 1년을 제외하고는 숭례문이 화마에 내려앉고 그것을 세우기까지 5년간, 숭례문복구단 부단장과 단장으로 이 사업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단청 훼손에서 시작한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이 마침내 문화재 보수현장 전반으로 번지고 대통령까지 문화재 비리를 '원전비리'에 맞먹는 수준으로 규정하면서 문화재청과 주변은 만신창이가 됐다.

감사원은 감사관 54명을 투입한 감사에 착수했으며, 경찰 또한 총력을 투입해 문화재 비리를 조사 중이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그 자신 또한 감사와 수사를 받는 최 국장이 숭례문 복구와 관련한 증언록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에서는 "또 다른 분란과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며 발간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최 국장은 숭례문 복구에 대한 평가는 후세를 기다린다는 심정을 토로하며 '숭례문 세우기'(돌베개)를 냈다.

'숭례문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책은 2008년 2월10일, 숭례문이 화마에 휩싸이는 시점에서 시작해 복구가 어떠한 준비 과정을 거쳐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정리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 느닷없는 인사로 복구단장에서 밀려난 지난해 3월 25일에서 끝맺음한다.

책은 저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문화재청장까지 포함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이미 문화재청이 여러 차례 공언한 대로 이 책에서 최 국장 또한 숭례문 복구는 ▲ 화재 전으로의 복구 ▲ 원형으로의 복원 ▲ 기존부재 다시 사용 ▲ 전통기법과 도구사용이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밝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충돌과 반발, 그리고 타협이 있었음을 책은 생생하게 증언한다.

예컨대 목재만 해도 그것을 다듬는 치목(治木)은 전통연장을 사용했지만, 그것을 베어내 현장으로 옮기는 방식까지 전통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기와를 만드는 제와장 선정과 관련한 비화도 공개했다.

문화재청이 전통방식에 의한 수제기와를 사용한다는 원칙을 발표하자 공장식 기계기와를 대량으로 찍어내던 업체들은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최 국장에 따르면 이들 기와업계 대표들은 문화재청을 항의방문하고 항의서를 전달한다.

서한은 제와장 H씨를 겨냥해 "일본식 소성기법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H제와장은 지난 23년 동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것으로 만족하고 지금 당장 물러나서 더이상 우리의 선대 기와 장인들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최 국장은 대목장 선정과 관련한 일화는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다.


최 국장에 따르면 대목에는 S씨라고 책에서 표시한 신응수 대목장을 비롯해 4명이 응찰했다.

심사위원들이 논의한 결과 궁궐 건축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신 대목장이 선정됐다.

하지만 대목 공사는 이미 알려졌듯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신 대목장이 공사 단가가 턱없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한달간 목수들을 철수케 하는 '파업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최 국장은 이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도 별도 장을 마련해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나아가 철물 제작도 전통방식에 따라 관련 장인까지 선정했다가 실패해 경복궁에 보관하던 조선시대 경회루 철물로 해결한 일도 있다고 말한다.

숭례문 현판 복원과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곡절이 있었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복구단과 자문위원회에서는 변형 이전으로의 복원을 확정했지만, 이런 보고에 당시 문화재청장이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당시 청장은 이건무. 이 청장은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예로 들면서 이런 전철을 현판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분노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화재가 나자 소나무 국민기증이 몰려들어 그런 의사를 밝힌 사람이 166명에 이르렀지만, 실제 기증자는 10명에 지나지 않았다거나, G20 서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는 현장 가림막을 부랴부랴 설치하기도 했다는 등의 일화도 공개했다.

최 국장은 이번 책 곳곳에서 문화재 보수 현장에서 우리의 전통방식과 전통재료, 전통도구가 밀려난 현실에 분개하면서 "그 저변에는 산업의 밑바탕이 된 대량생산과 높은 능률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숭배가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숭례문 복구는 지금까지 당연시되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숭례문을 통해 공장제 기와와 화학안료, 현대철물을 몰아낸 것 등을 들었다.

최 국장은 "그러나 이미 잊혀진 기법을 되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시대의 기법은 그 시대의 여건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숭례문 복구는 실시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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