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은 비주류 출신이다. 과거 직업군인이었지만 육사가 아니라 간부 후보생 출신이었다. 군문을 떠나 은행에 근무할 땐 비은행업무를 맡았다. 늦깎이로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한 후로는 젊은 IT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전문가를 가리키는 '돌IT인'이라 불렸다. 그렇지만 그는 주류를 자처한다. 비주류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비주류는 눈치볼 것도 없고 더 나빠질 수도 없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하면서도 용감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긍정의 힘.
"주류의식을 갖고서 삶을 즐기는 한편 주변에 에너지를 나눠 주는 사람이 진짜 주류예요. 과거지향적인 출신 배경이나 스펙이 아니라 프로냐 아니냐가 주류의 기준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완전한 주류라고 자부합니다."
파나소닉 브랜드로 유명한 일본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이 내게 가난을 주었기에 부지런함을 얻었고, 병약함을 내렸기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충분히 교육받을 수 없는 환경은 나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게 했다." 김 회장은 기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어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 우선 올해 보안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올해 역점을 두는 사업은 뭔가요?
"지난해보다 업체 수가 15%가량 늘어 제한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거로 봅니다. 그래서 중요 시설에 대한 시스템 보안, 자산관리에 안전관리 솔루션과 에너지 절약 시스템을 융합한 서비스를 구상 중이에요. 관련 회사들과 제휴해 상생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보려 합니다."
✚ 보안 서비스는 내수산업일 수밖에 없나요?
"아랍에미리트에 짓는 원자력발전소의 보안 시스템을 우리가 설치합니다. 이라크ㆍ시리아ㆍ이란 등지를 겨냥한 해외사업부도 있고요. 지난해 다른 사업부들은 다 이익을 냈는데 여기만 손실을 봤습니다. 그래도 5~10년 후 몇백억원 매출을 목표로 투자를 합니다. 장차 해외사업 비중을 30% 이상으로 키울 작정입니다. 어느 나라나 보안은 자국 산업으로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보다 더 키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에너지 나눠 주는 사람이 진짜 주류
지난해 해외사업부는 4억원의 손실을 봤다. 5년 전엔 두바이에 지사를 설립했었다. 10억원을 날리고 2년 만에 철수했다.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의 방 한구석엔 두 개의 낡은 사무용 의자가 놓여 있다. 20년 전 화장실 절반만한 13. 2㎡(약 4평)짜리 창고에서 창업할 때부터 사용하던 네 개 중 남은 것들이다. 격에 맞지 않는 이 의자를 내버리지 않은 건 창업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쓰는 집무책상과 의자, 회의용 탁자는 IMF 체제 시절 지인이 쓰던 것을 인수했다. 창업한 지 3년 만에 회사가 부도나 사무실의 집기를 버리려던 그에게서 구입한 가격에 되사서 실어왔다. 집무실에 소파를 들여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희를 넘긴 그는 "소파에 앉아 지내기엔 아직 젊다"고 말했다.
그는 21년간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연대장(중령)으로 예편했다. 베트남전 참전 당시 난청 장애를 얻기도 했다. 금융회사 간부ㆍ임원을 거쳐 조은시스템을 창업할 당시 그는 재무제표도 제대로 볼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경영학을 공부한 일도 없다.
✚ 나름의 경영론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군에서 배운 상황 판단과 부대지휘 절차를 회사 경영에 응용했습니다. 임무가 부여되면 그 임무와 여건을 분석ㆍ판단한 후 일정한 절차에 따라 임무 수행에 들어가듯이 시장을 분석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작전을 하듯이 밀고 나갔죠. 무엇보다 '좋은 경영'의 공식은 'T(Take)=G (Give)+알파'라고 봅니다. 고객과 구성원에게 먼저 가치를 주면 알파가 붙어서 되돌아온다는 거죠. 직원들에게 회사 지분을 줬을 때 다른 기업인들이 저의 행동을 이해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려고 했기에 이만한 성과를 거둔 거예요. 저는 경영이란 곧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 지속가능한 경영의 조건은 뭐라고 보나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겁니다. 환경이 계속 변화하는 데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환경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은시스템이 보안 전문 기업이지만 에너지 절약과 안전관리에 눈을 돌린 것도 보안만으로는 고객들이 만족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기업들이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다가 사고가 나면 그제야 대응을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안전관리를 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회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일종의 융합이죠. 에너지 절약 시스템을 접목하려는 것도 같은 취지고요. 이렇듯 서로 다른 기능을 융합한 서비스도 창조경제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아직 없고 작은 회사가 할 수 있는 틈새 영역이라고 봅니다."
틈새시장을 겨냥한 차별화는 창업 CEO로서 그의 핵심적인 전략이다. 특히 후발주자로서 에스원ㆍADT 등 보안업계 강자들이 취약한 공항, 금융권, 공공기관 쪽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이들 틈새시장은 경쟁의 무풍지대였다. 말 그대로 블루 오션이었다. 그는 이렇게 찾아낸 시장에 화력을 집중했다. 조은시스템은 개항 때부터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을 맡고 있다. 특수 경비, 금융보안 분야 시장점유율 1위로 주한미군기지의 보안도 전담하고 있다.
56세에 훗날 잡코리아로 이름을 바꾼 인터넷 회사 칼스텍을 창업해 구인ㆍ구직 사이트로 특화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그는 이 회사를 1억 달러에 미국 몬스터닷컴에 매각했다. 이에 앞서 잡코리아 창업 당시 그는 지분의 절반을 김화수 개발실장(현 사장) 등 창업 멤버 4명에게 줬다. 이들은 회사 매각으로 30억~60억원씩 벌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들과 그 후로도 가깝게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출중한 실력으로 적은 급여를 받고 헌신적으로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회사 지분 줘
IMF 체제 후 조은시스템이 증자를 할 때도 2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절반의 지분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500만~20 00만원어치씩이었다.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보다 적다고 불만스러워하는가 하면 적게 받았다고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지분을 매각한 사람도 나왔다. 그는 언젠가 전 구성원의 주주화를 다시 시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게 평생의 저의 지론입니다. 그럴 수 있는 비법이 더 나쁜 상황에 비하면 낫다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때 나간 직원이 남아서 회사를 해를 끼치느니 그렇게 떠나는 게 낫다는 식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그는 조은문화재단을 만들어 문화, 인재, 연구에 대한 지원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지원금은 연간 1억5000만원~2억원에 이른다. 다문화가정, 새터민, 탈북청소년학교, 장애인시설 등이 대상이다. 또 자신의 사후에 재산의 절반을 이 재단에 기부하고 자신의 시신은 연구기관에 기증하도록 조치를 해두었다.
"소외된 사람들과의 나눔은 인간으로서의 책무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자기가 이룩한 것의 일부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요. 폐지와 종이컵을 주워 내다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한 장애인도 있지 않습니까? 참 존경스러운 분이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성공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부차적으로 자녀에게도 좋은 교육이 되고요."
그는 세 자녀가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장남은 자회사인 조은INS 대표를 거쳐 조은시스템에서 일한다. 둘째인 딸은 의사로 최연소 박사학위를 받고서 피부과병원 개업의로 있다. 고대 경영대 학생회장을 지낸 막내아들은 운동권이었다. 학점 부족으로 졸업을 못한 채 영국 LSE를 나와 ADL코리아 컨설턴트 등을 거쳐 조은세이프에 몸담았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운동권 시절 5년 동안 수배자 신분이었던 막내는 형의 결혼식도 참석 못했다고 한다. NL (민족) 계열로 현상금 액수도 가장 높았던 그의 결혼식 날 김 회장은 과거 아들이 수배자일 때 거의 매일 회사로 찾아왔던 형사를 초청했다. "그 시절에 고생 많이 했으니 와서 밥이나 한 끼 먹으라고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 그는 말했다. "큰아들은 창업 3년차 때 봉급을 안 줘도 될 사람이 필요해 들여놓았고 자산운용사에 다니면서 연봉 1억6000만원을 받던 막내아들은 6000만원 주기로 하고 데려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둘 다 이제 40대 전반이죠."
그는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차례 군 후배를 영입해 5~6년씩 대표이사를 맡겼다. 그런데 얼마간 지분도 줬지만 만족을 못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전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직원들과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더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후에도 조은시스템이 과연 사회공헌 활동을 제대로 해나갈지 미심쩍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창업 당시부터 뜻을 같이한 임원과 자식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 그래서 경영권 승계에 대한 복안은 마련했습니까?
"창업 공신인 이명근 부회장에게 4~5년 간 경영을 맡긴 후 자식들이 50대가 되면 경영권을 물려줄 겁니다. 초창기부터 저와 함께 일한 아이들이죠. 제가 세상을 떠난 후 조은문화재단을 유한재단처럼 잘 키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는 20년 후 세상을 바꿀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르면 올 하반기 20대 후반~30대 전반의 젊은이 약 40명을 선발해 매월 캠프를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남에게 주기 좋아하고 손해도 볼 줄 아는 좋은 가치관을 지닌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미래에 도전하도록 자극을 주고 싶어서다. 그는 이들이 장차 통일 한국을 이끌 세대라고 말했다. 이 그룹에 탈북 청년도 2~3명 포함시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창업 후 설과 추석, 크리스마스에 쉬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설ㆍ추석 연휴 때면 공항, 은행 등의 근무 현장을 찾거나 사무실을 지킨다. 창업 초기엔 현장에서 직원들과 밤샘도 했다고 한다. "성묘도 그래서 미리 갑니다. 출동 경비도 하기에 우리 회사는 전 직원이 쉬는 날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명절이면 '여러분이 근무 중일 때 나도 같이 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막상 현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양심의 소리에 따를 뿐입니다."
✚ 젊은 세대에게 나름의 조언을 한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누구나 평생 4~7번 성공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게 기회라는 걸 간파할 수 있어야 하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