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했으니까 위임을 해소 할 수 있는 권한도 갖게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소환제가 종종 거론돼 왔지만 아직도 국민소환제는 입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 적용되는 주민소환제가 우여곡절 끝에 입법화 됐지만 국회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그런데 어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가 거론돼 왔지만 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입장일 밝힌 건 처음이다.
그렇지만 국민소환제는 말처럼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에서 이 문제를 연구 검토해 당 최고위원회의에 공식 보고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나 실천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도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됐고, 19대 국회 들어서도 지난 2012년 9월 민주당 초선의원 14명이 국회의원 국민소환법을 발의했지만 아직 해당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그래서 (Why뉴스)에서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왜 늘 거론만 되고 실현되지 못하나?"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먼저 '국민소환제'가 뭐냐?
그동안 당선만 되면 4년간의 임기가 보장되는 '철밥통'이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을 임기도중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갖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교과서에서 배운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이다.
국민소환은 "선거직 공무원을 그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에 뜻에 의해 파면시킬 수 있는 제도로 국민파면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몇 개 주나 스위스, 일본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출직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있는데 대통령은 탄핵제도가 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주민소환제가 법제화 되어있지만 국회의원들을 견제하는 제도는 없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3일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회의원 특권방지법'에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이 포한된 것이다.
▶민주당이 갑자기 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추진하겠다고 한 거냐?
= 김한길 대표가 설날 민생투어를 했는데 아무래도 설날민심이 심각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민주당관계자들에게 확인해보니 대략 4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국회의원들의 선출과 퇴출이 유권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데, 선출은 유권자의 손에 있었지만 퇴출은 검찰이나 법원이 유권자를 대신하는 구조였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국민들이 의정활동의 과정에 대한 참여나 통제를 희망하고 있는데, 뽑아 놓고 나면 4년간 두고만 보라는 구조이므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시민들의 요구수준에 맞추고자 한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세 번째는 그동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국민소환제 도입을 요구해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의 일환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므로 기득권 내려놓기를 위해 이를 수용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의 통제를 받는다면 절대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도 국민에 대한 소통의 강화, 책임성의 강화 그런 것들이 보완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가 국민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을 맡고 있는 최재천 의원은 "민주당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들과 헌법적 이유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해서 당대표가 공식발표한 것으로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거론됐던 것과는 달리 진정성이 있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당'과 혁신 경쟁차원 아니냐? 그런 평가도 있는데
= 민주당에서는 그런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최재천 의원은 "지금 민주당의 상황이 여느 때와 달리 한가롭거나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면서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했고 새정치를 모토로 내건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몰고 가는 형국인 만큼 절박하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과 정치혁신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최 의원은 "그래서 민주당이 제안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선언적인 정치 쇼나 그런 게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도 일단 환영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함진규 대변인은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민주당의 기본 취지에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법안으로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이번에는 입법이 가능할까?
= 사실 정치권이 뭘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선뜻 믿기 어렵다. 선거 때만 되면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다가도 당선만 되면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되는 일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자체가 신뢰성이 없다는 얘기다.
19대 국회가 출범한 직후 황주홍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초선의원 14명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도 지난해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면서까지 정치쇄신 의지를 보였지만 정치쇄신위원회의 최종보고서가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가 제출한 최종보고서에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와 개방형 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추진 등 30가지 과제가 담겨있었다.
특위원장을 지낸 숙명여대 박재창 교수는 지난해 8월 특위활동을 마감하면서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랄까, 새로운 시대적 소명이나 시각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기대보다 낮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입법화되지 못했다. 국민소환제는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마다 정치쇄신의 한 방안으로 제시되었지만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국회의원들과 정치학 교수, 정치평론가들에게 이번에는 국민소환제가 입법화되겠느냐고 물어보니까 국회의원들은 이번에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치학 교수나 정치평론가들은 기득권 내려놓기가 쉽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렇지만 일단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까 각 정당에서는 명분에서 이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과, 민주당이 절박한 심정으로 제안을 했고 새누리당이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낸점, 그리고 '안철수 신당'이 새정치를 표방하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뭔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국민소환제가 입법화된다고 실효성이 있는 거냐?
=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철밥통 국회의원들을 견제할 제도가 도입된다는 점에서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도 실효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하는 건 맞지만 실제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라면서 " 그 근거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 대해 주민소환이 몇 차례 발의가 됐지만 투표율 미달로 성사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들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도 "극단적인 경우를 대비해서 제도환 하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 교수는 "국민소환제는 정치쇄신의 우선순위에서 그렇게 높은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자치단체장에 대해 주민소환제가 도입됐다고 신뢰를 더 얻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당연히 해야 할 사안이지만 정치개혁의 핵심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민소환제도가 지난 2007년 5월 도입이 됐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 대한 소환투표가 추진됐지만 성사된 경우는 두 차례에 불과하다. 2007년 광역 화장장 건립에 앞장선 경기도 하남시 시의원 2명이 주민소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하남시장이나 과천시장 제주지사 등에 대해 추진됐던 주민소환은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 개함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왜 실현되지 못한 거냐?
=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국민들을 주권자로 대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선거가 끝나면 잊혀지고 만다.
우스갯소리지만 "국회의원들이 가장 황당한 경우가 유권자들이 자신의 말을 사실로 믿을 때"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은 빌 공자 공약을 남발하는 걸 연례행사처럼 해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이 국민을 주권자 주인으로 규정을 하고 있다.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그렇지만 국민들은 스스로 주인으로 행세하기 보다는 투표 때만 주인대접을 받는 걸로 만족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이 주인이라는 의식이 없다보니까 국회의원들이 위임받은 권한을 자신의 권한으로 착각하면서 국정을 농단하고 자신들의 이권 챙기기에만 열을 올려도 '미워도 다시 한 번' ' 나물에 그 밥' 현상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손가락 탓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얘기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 당이 정치쇄신을 하겠다고 얼마나 목소리를 높였나? 그런데 당시에 약속했던 정치쇄신 혁신안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양당이 다시 정치쇄신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번에도 연례행사처럼 '국민소환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유권자인 국민들 스스로 이것이 실현되리라고 믿지는 않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치권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제대로 심판했다면 이렇게 빌 공자 공약이 남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심부름꾼인 정치인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스마트 세상이 실현되면서 점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소환제는 아주 초보적인 직접민주주의 한 요소일 뿐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지난 2012년 대선에 출마해 시민들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사람이 많고 국가가 크다보니 대의민주주의가 기본적인 전제이긴 하지만 이제는 기술이 발달했으니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야한다"며 "최근 IT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게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국민들의 의식은 엄청나게 진화를 하고 있는데 정치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면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요구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