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지금의 현실은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을 무색게 하고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만 놓고 봐도 정부 역량평가서 탈락한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임기 만료로 공석인 경영지원본부장 자리에 모 사단법인 정책연구실장이던 이 모 씨를 사실상 내정했다.
이 실장은 국회 보좌관, 원내총무 비서실장, 건설교통부장관 보좌관 등을 역임한 정치계 인사다. 이 씨는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 역량평가에서 탈락했지만 공사는 이 씨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할 예정이다.
가스기술공사 관계자는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선임했고,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3번까지는 재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를 꿰차면 이 회사의 경영진은 100% 낙하산으로 구성된다.
한국가스기술공사 노조 현지형 지부장은 "강원도 행정부지사 출신의 사장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출신의 감사, 지식경제부 과장 출신의 기술사업본부장 등 경영진 전원이 낙하산 인사로 구성된 상태에서 관련 분야 경험이 전무한 이 실장을 경영본부장으로 선임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가스기술공사 뿐 아니다. 사회공공연구소가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의 2008년 이후 기관장 임명 현황을 파악한 결과 12명 중 11명이 낙하산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5명이 새로 낙하산으로 채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에 착수한 지난해 11월 이후 공공기관들은 기관장과 감사 40명을 새로 임명했는데, 이 중 15명(37.5%)이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었다.
한국도로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투자공사(이상 사장), 한국마사회(회장), 예금보험공사, 한국전력,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이상 감사) 등의 요직에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기관장은 물론 야당 역할을 하라며 선임한 감사와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까지도 낙하산으로 채워지다 보니 감시도 견제도 없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하진 의원실에 제출한 '41개 산하기관 이사회 개최 현황(2011~2013.09)'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이사회 상정 안건 2657건 중 95.7%가 원안 가결된 사실도 이 같은 공공기관의 파행적인 운영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부 기관들은 멀쩡한 회의실을 놔두고 해외 관광지나 특급호텔에서 이사회를 연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하진 의원은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과 공기업 부채가 이 지경까지 온데는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들의 책임도 크다"며 "이사회가 경영 감시자로 제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집권여당 인사들은 "집권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분으로 임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낙하산을 더 내려 보내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비정상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서 진행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이, 그리고 박 대통령의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이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