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4월 아시아 순방 때 한국을 반드시 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주장한 내용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동맹의 주요한 축인 한국을 빼고 일본만 방문할 경우 한일은 물론 북한과 중국에까지 잘못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 등 아시아 이슈에 밝은 인사들이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로이스 미 하원외교위원장이 소녀상을 참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의 역할이 급속도로 확대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은 생략되더라도 일본을 찾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었다. 일본 정부가 '오바마 모시기'에 전 외교채널을 동원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3일 미일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이 확실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시작으로 일본의 과거사 부정 행보가 이어지고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국이 당초 계획을 따르기가 어려운 환경이 됐다. 미국은 한중일 갈등을 야기했던 집단적자위권 문제나 영토 분쟁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세를 취했지만, 과거 제국주의 침략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는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묵인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미 조야의 시각을 면밀히 챙기면서, 이런 목소리가 실제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관련해 대일 외교 뿐 아니라 대미 외교도 병행해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이 한미일 3각 공조의 중요성을 들어 일본의 잘못된 행보를 묵인할 경우,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 사이에서 한국만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정부는 일찌감치 오바마 순방국에 한국을 포함시키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윤병세 장관은 새해 정초부터 미국으로 가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과 만나 현 국면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성킴 주한 미국 대사도 만났다. 주미 한국 대사관이나 본부 모두 해당 카운터 파트를 상대로 지속적인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순방은 동남아 국가 순방이 주된 일정인 만큼 일본이나 한국 모두 방문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방한 자체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일본과 경쟁에 나섰다는 점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