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즐거운 명절'이 가정불화로 오히려 '불쾌한 명절'이 된다.
A 씨는 결혼한지 10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명절에 친정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 사시던 아버지가 늘 마음에 걸렸지만 남편은 명절 내내 시댁에만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길 원했다.
더욱이 남편은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고향으로 명절을 쇠러 온 친구들과 매번 술을 마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시댁 식구들은 A 씨에게 음식 준비나 손님 맞이를 전부 일임한 채 전혀 도와주지도 않았다.
지난해 추석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던 A 씨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여자가 시집을 왔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대응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고, 결국 이혼위기에 놓였다.
이렇듯 즐거워야 할 명절이 불화와 갈등의 근원이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 2011년 이혼한 신모(43) 씨와·권모(39·여) 씨도, 시댁 위주의 명절 문화때문에 갈등을 겪었다. 명절을 항상 시댁에서 보내는 바람에 추석 다음날과 설 다음날에 있는 친정아버지의 생신과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권 씨의 불만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소한 오해로 인해 시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지자 아내 권 씨는 2009년부터 시댁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명절 때마다 심하게 다퉜고 결국 이혼소송을 냈다.
명절에는 재산이나 양가 어른들께 드릴 용돈, 선물 등 금전 문제를 놓고도 갈등이 표출되곤 한다.
2005년 9월 정모(38·여) 씨는 남편과 추석명절 양가 어른들께 드릴 용돈 문제로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용돈 문제로 심하게 다투던 중 아내 정 씨는 "시집에 가지 않겠다. 그까짓거 안가면 그만"이라며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남편이 이를 막자 격분해 남편을 손톱으로 할퀴고 주먹으로 마구 쳐 상처를 입혔다.
한 변호사는 "설이나 추석이 지나면 가족들 사이 폭력이나 재산문제로 법정까지 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며 "묵은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 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끙끙 묵혀온 불만과 극심한 스트레스는 끔찍한 사건을 불러오기도 했다.
지난해 3월 김모(21) 씨는 흉기와 수갑 등을 챙겨 작은아버지의 집에 침입한 뒤 할머니와 고모, 작은아버지, 사촌동생들에게 마구 흉기를 휘둘렀다.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작은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쇼크로 숨졌고 다른 가족들도 다쳤다.
원인은 가족 간 해묵은 갈등이었다. 평소 명절 등 가족모임이 있을 때면 김 씨는 자신의 어머니와 작은아버지가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며 작은아버지 가족에 대한 적대감은 갈수록 커졌고, 분노와 스트레스가 잘못된 방법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법원은 김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61·여) 소장은 "남녀차별이나 종교적인 이유, 역할 갈등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 스트레스가 명절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면 그들이 안고 있던 표출되지 않았던 갈등들까지 다 모이는 것"이라면서 "시댁 중심의 가부장적인 인식과 서로에 대한 배려 부족 등으로 불화가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 "요즘에는 남녀 모두가 명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대화와 공감을 통해 서로의 짐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