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CBS는 2014년 신년기획으로 모두 3회에 걸쳐 광양만 매립 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는 연속기획 ‘광양만 매립 30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 광양만 뻘밭에 모래기둥 심어 제철소를 짓다
2. 광양만 13개 섬, 매립됐지만 흔적은 남았다
3. 광양만 매립 30년 압축적 성장과 오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광양은 인구가 8만여 명인 작은 군에 불과했다. 농업과 어업 등 1차 산업에 의존한 경제는 내세울만한 것이 없어 외지인 유입과 지역개발 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광양의 변화와 성장은 지난 30년 동안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1984년 광양만 매립에 이어 1987년 광양제철소 1기 설비공장이 준공됐다. 이후 2년 만에 인구가 13만여 명으로 크게 늘었고 동광양시로 승격됐다.
1980년대 초반 50억 원대였던 광양의 재정은 지난 2012년 말 기준 4,455억 원으로 80배 가까이 늘었다. 인구도 15만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0년 기준 광양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1조5천여억 원. 광양시 인구 1명당 추산액은 7,900만원으로 서울 2,600만원 보다 3배 이상 높다. 출산율도 2.002명으로 1.059명에 불과한 서울의 2배에 달한다.
철도와 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도 확충됐다. 제철소 1기 설비공장 공사가 한창이던 1986년 12월 광양항이 개항했다. 이후 1~3단계 컨테이너부두가 차례로 준공했고 지금은 92개 선석에 부두길이가 21,666m에 달해 2억7700만톤, 460만TEU의 하역능력을 갖춘 국내 제2항만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1년 전남발전연구원이 전남도내 도시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광양시는 인구증가율, 생산성, 일자리 확보 등 15개 지표에서 5개 도시 중 가장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기반을 나타내는 경쟁력 지표에서도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서기 광양시의원은 “최근 철강 경기 불황에 지역경제가 휘청하는 것은 그만큼 포스코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라며 “보다 긴밀한 소통으로 지역민과 같이 성장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주민 모임인 금호회 장옥기 회장은 “30년 전 이주해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렵게 살고 있는 이주민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환원”이라고 말했다.
송재천 광양시의원은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해 포스코도 위기에 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며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광양만 매립 이후 광양은 김밭이 금(金)밭으로 변했고, 쇠를 팔아 먹고사는 기업도시가 됐다. 공자는 서른 살을 모든 것의 기반을 닦는 나이라고 해서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이제는 매립의 역사와 흔적을 찾아 보존하고, 고속 성장 이면의 소외된 지역을 돌아보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