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계의 아이돌' '행사의 여왕' '하이웨이 퀸'으로 불리는 트로트 가수 금잔디(36)에게 설 계획을 물었더니 호탕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행사 제의를 받고도 차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2009년부터 지구 4바퀴 거리를 뛴 2013년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란다. 지난해 설에는 라디오생방송을 3개나 소화하느라 떡국도 못 먹었다. 하지만 불러주는 곳이 많아 굶어도 신이 났던 그다.
올망졸망한 이목구비에 애교 넘치는 눈웃음, 한복도 미니스커트로 만들어 차별화한 금잔디는 팬들 사이에서 '공주님'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는 웬만한 남자 못지않은 대장부다. 어려운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온 그는 뒷바라지한 남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해 아이돌그룹 엑소가 음반 100만 장을 판매해 화제가 됐는데 금잔디는 지난 2년 '길보드차트'에서 엑소를 능가하는 성적을 거뒀다.
2011년 발매된 그의 음반 '트로트 메들리'가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하루에 100장씩 팔리면서 누적판매량 100만장 이상을 기록한 것. 주현미 등 선배가수들의 노래를 기존의 트로트 창법이 아니라 특유의 담백한 창법으로 불렀는데 이게 적중했다.
2009년 금잔디와 손잡은 김태우 올라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해 전국의 행사와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달린 거리가 총 17만km로 무려 지구 4바퀴를 넘어섰다"며 "차를 산지 1년 만에 벌써 덜덜덜 한다"고 기분 좋게 웃었다.
■ 고속도로 휴게소 들를때마다 "와 금잔디다" 알아봐 뿌듯
올 설 연휴 고속도로 이용객이 지난해보다 2.3%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금잔디의 노래를 못들어 봤다 해도 이번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리면 누구나 예외 없이 듣게 되지 않을까. 고속도로 하이숍 관계자들 사이에서 금잔디가 복덩이로 통하기 때문이다.
"나훈아 이후 음반 팔아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금잔디 덕분에 살맛난다고들 하시죠. CD뿐만 아니라 제 공연 영상을 중심으로 만든 DVD도 하루 종일 틀어놔서 알아보는 팬이 늘었어요. 어떤 날은 휴게소 10곳을 들렸는데 들리는 곳마다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셨죠. 벌써부터 신보가 언제 나오느냐고 아우성이에요."
귀성길 꽉 막히는 고속도로상황을 떠올리면 팬들에게 금잔디의 신곡만큼 좋은 처방도 없을 텐데, 도대체 신보는 언제 나올까?
최근 신곡 녹음을 마쳤다고 밝힌 김 대표는 "중장년층이 나들이를 떠나는 3월에 나온다"며 "봄에는 미니앨범 2.5집과 댄스음악메들리, 가을에는 8090메들리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미니앨범 2.5집에 대한 금잔디의 기대는 컸다.
"제가 메들리에서 다시 부른 오승근 선배의 '내 나이가 어때서'가 대박이 나서 지난해 인기 트로트 순위권에 들었어요. 행사에 가면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사실 제 노래가 아니잖아요. 올해는 제 노래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쩔수 없는 사랑을 줄여 만든 '어쩔사'라는 노래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잘났다고 다투나'란 가사가 마음에 들었죠."
타이틀곡은 '여여'다. 금잔디의 히트곡 '일편단심'이나 '오라버니'가 현대화된 엔티크 트로트라면 이번 노래는 전통 트로트다.
"태진아 선배의 사모곡처럼 발라드 느낌의 트로트예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란 의미가 담긴 제목인데, 요즘 중장년층이 들을 트로트가 없어서 아직 연륜이 부족한 나이지만 도전해봤어요."
■ 자기집 선뜻 팔아 음반제작비 4000만원 마련해준 팬과 식사
몇 년 만에 명절을 여유롭게 보내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을까?
금잔디는 "일단 팬카페에 설 인사를 올리고 지금의 금잔디를 있게 해준 신림동의 한 주부팬과 식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래전 생면부지의 자신에게 대학등록금을 선뜻 빌려준 고향 강원도 홍천의 어르신께도 인사를 드릴 예정이다.
금잔디는 우울증을 치료한 경주의 주부, 말기암을 치유한 아이디 '은빛님' 등 유난히 주부팬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중 신림동 주부팬은 돈이 부족해 음반이 내지 못할 당시 집을 팔아 4000만원을 마련해줬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금잔디의 '일편단심'(2009)이다.
금잔디는 "그 분이 아니면 지금의 금잔디는 없다"며 "다행이 작년에 다 갚았는데, 팬으로 시작해 이제는 가족이 됐다"며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칠순의 어르신은 또 누굴까. 금잔디는 중학교 때 아버지의 관광버스 사업이 망해 일찍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공주영상정보대 실용음악과와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그는 첫 대학등록금이 부족해 부자라는 소문만 듣고 어르신을 찾아가 돈을 빌렸다.
"그때 200만원을 빌려주셨죠. 그 인연으로 어르신의 할아버님이 동학농민운동하다 돌아가셔서 3월마다 고향에서 추모행사가 열리는데, 그날은 다른 스케줄 안 잡고 행사에 참석해요. 명절에는 인사드리고, 혹시 일이 있어 못가면 전화를 드립니다."
금잔디가 휴식을 취하면서 지난 5년간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은 김 대표도 지금껏 가장 편한 명절을 보내게 됐다. 집안의 장손인 김 대표는 그동안 명절 당일 하루만은 금잔디의 일정이 잡혀도 고향에 내려갔다.
금잔디와 10년 이상 알고 지낸 미혼인 최지웅 홍보이사에게 일을 맡겨놓고 조상께 차례상을 올렸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으리라.
금잔디는 오히려 "평소에 저를 위해 늘 열심히 뛰어주시니 김 대표님 가족들께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김대표의 사정을 살폈는데, 이렇게 인연을 두루두루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지금의 금잔디를 있게 한 원동력처럼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큰 사랑을 받았는데 갑오년에는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요. 올 한해 여러분의 희로애락을 대신 표현해주는 가수로서 열심히 노래할게요. 행여 꽉 막힌 도로보며 스트레스가 쌓여도 제 노래 들으면서 날려보세요. 금잔디가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