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쉽지 않은 공기업 개혁, 너무 정치적 접근…"이전 정부 전철 밟아선 안 돼"
지난달 26일. 한 보수 일간지와 또 다른 종편 채널은 '하루 승객 15명인 역에 역무원 17명'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공기업을 대수술하겠다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나온 지 보름이 되던 무렵이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역을 구조조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강성 노조 탓으로 돌렸다.
이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방만 경영이다", "양심 없는 귀족 노조 새끼들", "노조의 폭거이면서 만행이다" 등 분노의 글들이 SNS를 달궜고, 이런 여론이 종편을 통해 재확산됐다.
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 기사는 왜곡 보도였다.
◈ 한해 수입 96억 누락, 근무인력 3조2교대 덮어
철도청통합정보시스템 확인 결과 쌍용역의 2010년 수입은 96억 1,500만 원이었다. 화물 수입 95억 9,600만 원에 여객 수입 1,900만 원을 합한 금액이다.
문제의 기사에서 밝힌 수입 1,400만 원보다 6,867배나 많은 액수다.
근무자의 경우는 보도대로 17명이 맞다. 2014년 현재는 15명이 근무 중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3조 2교대제 운용 시스템상 하루 실제 투입 인원이 5명밖에 안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누락시켰다.
한 사람이라도 휴가를 가거나 하면 4명이서 관제, 수송, 화물 등의 업무를 떠안고 있는 현실을 덮은 것이다.
◈ 쌍용역 근무자들 “전화 한 통 없이 어처구니없는 기사 작성”
김상희 로컬관제원은 "황당하고, 분개해 나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며, "우리 15명을 한순간에 국민 혈세나 빨아먹고 사는 사람들로 만들었다"고 노여워했다.
한 역무원은 해당 기사가 나간 뒤 가족 모임에서, 처남에게 편한 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조롱을 들었다고 했다.
박창용 역장은 "최소한 쌍용역에 전화해 한 번만 확인했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사는 안 나갔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국토부, 잘못된 자료 인정하면서도 자료출처는 함구
두 기사의 자료 출처는 국토교통부다. 국토부는 자료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누가 제공했는지는 함구했다.
대변인실의 한 사무관은 “당시 철도파업 중이라 급하게 자료가 만들어지고 제공돼 누가 제공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당시 이 기사가 나오자 팔로워가 4만 2,551명(2014년 1월 27일 기준)인 국토부 공식 계정 트위터로 기사를 13차례나 트윗했다.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나선 이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 여론몰이 속 진실왜곡 빈번
정부가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는 레토릭과 함께 언론을 앞세워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것이 성과급(상여금)이다.
공기업의 부채는 증가하는 데 반해 성과급은 늘렸다는 도식이다.
그러나 성과급의 경우 공공기관 스스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각 기관을 경영평가한 이후 그 결과에 따라 정부가 성과급을 사실상 결정해 주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이 2009년에 비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시 2009년 당시 MB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정책(공공기관선진화정책)에 따라 성과급이 일률적으로 대폭 삭감된 기저효과 때문이다.
언론에서 공기업의 방만경영의 사례로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녀의 학자금 지원도 사실과 다르다.
공기업 경영혁신계획에 따라 과거 학자금 무상지원 방식에서 대부분 융자지원으로 바뀐 지 오래됐다.
◈ 일방적 여론몰이로는 공기업 개혁 성공 어려워
그렇다고 공기업의 다른 방만경영 사례가 면죄부를 받아서는 곤란하다. 노조의 잇속 챙기기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고 따라서 공기업 개혁은 중단 없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일방적 여론몰이 방식은 당사자의 심한 반발만 살 뿐이다.
이것이 사회갈등을 초래하고 국력 소모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평가단 소속의 A교수는 “공기업 개혁은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로는 곤란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상대방을 굴복시킬 논리와 명분 없이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추진하다가는 오히려 반발만 사고 그러다 보면 시간을 버리고 결국 개혁의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의 방식은 이전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계는 정부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앞세워 공기업, 노조를 손보려한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견지하며 결사항전 태세다.
이경호 공공노련 사무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선과정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나라가 시끄러웠냐. 그런데 갑자기 공기업 개혁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마디로 나쁜 놈 하나 만들어 그 놈 때려잡자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현 정권의 희생양인 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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