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처음 발생한 전북지역 공무원들은 다가오는 설 연휴가 오히려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AI와의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열흘이 넘도록 이어지는 AI 방역에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된 지 오래다.
지난 17일 첫 AI 감염 의심신고가 들어온 뒤 연일 비상근무를 하는 전북 부안군청 농업축산과의 이달원(49)씨는 "그야말로 전쟁"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씨는 지난 주말에도 하루도 쉬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 AI 확진판정과 의심신고가 나오면서 매몰 처분해야 할 닭과 오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동료와 함께 매몰 처리한 닭과 오리가 10만마리가 넘는다.
현장에 들어가면 일을 끝낼 때까지는 숨 돌릴 틈도 없다.
빵 한 조각, 김밥 한 줄로 때우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특히나 멀쩡히 살아있는 가축을 땅에 묻으면서 느끼는 정신적 충격에 잠을 못 이루는 여직원들도 적지 않다.
이씨는 "과거에는 매몰 처분에는 주로 남자직원들이 투입됐지만 매몰 처분할 대상이 워낙 많아 이제는 여직원도 예외가 없다"고 설명했다.
부안군에서 지금까지 매몰 처분한 가금류는 31만마리.
앞으로 매몰 처분해야 하는 가금류는 27일 36만 2천마리, 28일 23만 2천마리, 29일 13만마리 등 70만마리가 넘는다.
어디까지나 추가 발병이 없을 경우이고, 추가로 AI가 나오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매몰 처분을 마치고 난 늦은 밤이면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무실로 가야 한다.
낮에 하지 못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직원들의 피로도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며 "국가적 재난인 만큼 체계적인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방역초소 근무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재 부안지역에 설치된 방역초소는 15개.
6인 1조로 24시간 근무가 돌아간다.
최근 그나마 시설이 개선돼 나아지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난로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차량의 히터나 손 난로로 몸을 녹이며 강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 때문에 감기에 걸린 공무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 걸핏하면 소독약이 얼어붙는 바람에 염화칼슘을 뿌려가며 방역을 해야 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상황실 직원이나 AI 예찰, 검사를 맡은 공무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 상황실 직원은 "교대인력이 없어 집에 가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새우잠을 잔다"면서 "살짝 눈을 감으면 전화벨 소리 환청마저 들린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성재 전북도 축산식품검사과장은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이후 직원 대부분이 열흘 넘게 집에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며 "설 연휴에는 틈을 내 세배라도 다녀오게 했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