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CIA, 국외 비밀감옥 빌리려 거액 돈상자 배달"

WP, 테러 용의자 구금용 CIA 국외 비밀수용소 뒷얘기 공개

2003년 초, 미국 중앙정보국(CIA) 간부 2명이 커다란 종이상자 두 개를 들고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미국 대사관을 나섰다.

이들은 폴란드 정보기관 본부에 도착해 부국장에게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현금 1천500만 달러(162억원 가량)가 들어 있었다. CIA가 바르샤바 근교의 한 저택을 '비밀감옥'으로 빌려 사용하는 대가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전직 CIA 요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CIA가 폴란드 등 동유럽에 설치한 비밀감옥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뒷얘기를 전했다.

201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부시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테러 용의자들을 구금하기 위한 비밀 감옥을 잇따라 국외에 설치했다.

'블랙 사이트(Black Site)'라고 불리는 이 비밀감옥은 2002년 3월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를 잡아들인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CIA는 처음으로 잡아들인 '거물급 죄수'인 아부 주바이다를 은밀히 숨기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다. 당초 동남아 국가를 물망에 올렸던 CIA는 협조 요청에 응한 태국과 캄보디아 가운데 태국을 선택했다.


아부 주바이다는 방콕 인근의 비밀감옥에서 수개월간 수십차례 물고문을 받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CIA는 이후 2000년 예멘에서 발생한 미 해군 구축함 '콜'호 테러 용의자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를 체포해 역시 태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태국의 비밀감옥은 "닭장 같았다"는 전직 CIA 간부의 말처럼 협소한 공간이 문제였다. 거물급 테러 용의자들이 더 잡힐 것으로 예상한 CIA는 여유 있는 공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CIA는 폴란드 정보 당국이 빌려준 저택에 30만 달러를 들여 보안시설을 갖추고 헛간을 감옥으로 고치는 등 '리모델링'을 했다. 러닝머신 등 수감자용 운동시설도 갖췄다.

CIA는 2002년 12월 초 아부 주바이다와 알나시리를 폴란드로 옮겼고 태국 시설은 폐쇄절차를 밟았다.

CIA는 '강화된 심문기술'이라는 명목 아래 이곳 수감자들을 상대로 구타와 수면박탈,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다.

9·11 테러범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도 이곳에서 183차례나 물고문을 당했다.

CIA는 이후 이런 시설을 루마니아와 모로코, 리투아니아 등지로 분산·이동했다. 이 가운데 '봄베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모로코 비밀감옥을 마련하는 데는 2천만 달러가 소요됐다.

이 비밀감옥들은 2005년 WP의 보도로 존재가 알려졌다.

CIA는 그해 국외 비밀감옥을 순차적으로 폐쇄하고 수감돼있던 테러 용의자 14명을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 수용소로 옮겼다.

하지만 CIA가 진행한 초법적인 구금 및 조사 프로그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2009년에서야 공식 종료됐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CIA 국외 비밀감옥에 대한 6천장 분량의 보고서를 조만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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