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카드를 만들었지만 고객이 기억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카드사의 대답에 A씨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과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만들어 줄 정도로 카드발급에 제한이 없었다. 직장생활 초년병이던 A씨도 지갑에 신용카드를 5,6장 정도는 꼽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도대체 생각해도 롯데카드는 낯설다는 생각에 A씨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신용카드를 만들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개별 카드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주민번호를 대고 카드 발급여부를 확인하려던 A씨는 포기하고 말았다. 정보유출 대란에 각 카드사 콜센터도 먹통이 돼버린 것.
이곳 저곳 수소문 끝에 A씨는 신용정보평가회사나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가면 자신의 신용카드를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유출사건을 일으킨 신용평가회사 KCB 홈페이지를 찾았다. 신용카드 조회 기능이 있었다. 더군다나 무료다-3개월에 한번씩 조회할 경우에만. 하지만 '살아있는' 카드만 조회됐다. 유효기간이 지난 '죽은 카드'는 찾을 수 없었다.
은행의 고객정보가 집중되는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도 유사한 메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유효기간이 지난 카드는 조회되지 않았다.
A씨는 금융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어 여신금융협회라는 곳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여신금융협회는 카드회사들의 모임이다. 협회 홈페이지에는 '신용카드 포인트 통합조회'메뉴가 있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넣고 모든 카드사를 선택한 뒤 조회단추를 누르니 현재 쓰고 있는 카드 뿐 아니라 과거에 만들었던 카드 이력도 나왔다.
A씨는 여신협회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협회는 "자사회원이 아니다라는 말은 해당 카드를 만든 적이 없거나 만든 뒤에 회원탈퇴를 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사용하지 않는 신용카드는 가위로 잘라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A씨였기에 카드사에 회원탈퇴를 자청한 적은 지금껏 없었다. 결국 카드를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 밖에 남지 않는다.
여신협회 홈페이지에서도 A씨가 롯데카드를 만들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어떤 카드를 만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카드사에 내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 사건에서 일부 카드사들은 탈퇴한 회원의 정보도 갖고 있었다고 하니 결국은 모든 카드사에 내 정보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밖에 없다. 카드를 만들었건 안만들었건. 그게 가능할까?
반나절 내내 롯데카드와 씨름하던 A씨에게도 소득은 있었다. 총각시절 사용하다가 결혼 뒤 '엄명'을 받고 잘라버린, 그리고 기억 속에서도 지워버린 모 카드사의 포인트가 10만 포인트나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