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동해병기법' 표결순간…한인들 일제히 환호

한때 日로비로 '부결' 소문돌기도…70여명 손에 땀쥐며 방청

"땅…땅…땅"

역사적인 동해병기 법안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상원을 통과하는 순간, 랄프 노덤 상원의장이 법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힘차게 내리치자 방청석에 앉았던 한인 70여명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한복 차림으로 나온 고한식(82)씨는 "평생의 한을 푼 듯한 느낌"이라며 연신 박수를 쳤다.

당초 이 법안은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었다. 그럼에도 한인들이 이처럼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일본의 막판 로비공작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10시를 넘겨 버스를 타고 리치먼드에 도착한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본회의 시작에 앞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도널드 매키친 의원이 동해병기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한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매키친 의원은 한인들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당선된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의 최측근 인사여서 '우군'으로 분류된 인물이었다. 매콜리프 주지사는 지난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동해병기 법안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지지한다고 약속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키친 의원이 느닷없이 수정안을 낸 것은 한인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수정안의 내용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기존 학습기준을 따르도록 한다는 것. 사실상 동해병기를 무산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순간 일본 측 로비가 작용했음을 직감했다.

이미 전날(22일)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가 매콜리프 주지사를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었다. 한인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부결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삽시간에 퍼졌다. 법안처리를 적극 지원해온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의 피터 김 회장은 기자들에게 "솔직히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초조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정대로 낮 12시를 약간 넘겨 본회의가 시작됐다. 이미 의장석에는 노란색 봉투의 수정안이 올라와있었다. 순서대로 법안들이 통과됐고 이어 'S.B. 2'라는 번호가 붙은 동해병기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매키친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에 이의를 제기한다며 수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그러자 법안을 발의한 데이브 마스덴 의원(민주), 리처드 블랙(공화), 챕 피터슨(민주), 재닛 하월(민주) 의원이 잇따라 일어나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수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매키친 의원이 다시 일어나 "일본해 단일표기가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병기 법안에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자 다시 블랙 의원과 마스덴 의원이 "학생들이 논란이 되는 명칭에 대해 양국의 주장을 모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받아치며 잠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덤 의장은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고 그 결과 거의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이어 동해병기법 본안에 대해 표결이 시작됐다. 38명의 의원들은 일제히 버튼을 눌렀고 전광판에 나타난 표결 결과는 압도적 찬성(31명)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은 일본계 유권자가 많은 지역구를 가진 민주당 의원 4명이었다.

법안이 통과된 이후 한인들은 이번 법안을 발의한 마스덴, 블랙 의원을 우르르 찾아가 "한국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일부는 얼싸안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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