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설익은 대책에 카드고객 '헛걸음'

급하게 내놓는 대책에 애꿎은 고객만 불편

23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사고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보고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설익은 대책을 남발해 고객들이 헛걸음을 하는 등 오히려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3일 카드 재발급 신청 폭주로 고객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등 불편이 가중되자 금융사 일부 점포를 '즉시발급 전담점포'로 지정, 이날부터 새 카드를 즉시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어 전담점포 운영에 따라 전국 123곳에서 즉시발급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달랐다. 이날 오후 롯데카드의 전담점포로 지정된 롯데백화점 한 영업점에서는 즉시발급이 이뤄지지 않아 고객들이 헛걸음을 해야 했다.

한 직원은 “즉시발급 점포가 맞기는 하지만 현재 카드 자재가 부족해 즉시발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가면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고 고객들을 안내했다.

즉시발급 기사를 보고 영업점을 찾은 김 모(36) 씨는 “카드가 롯데카드, 국민카드밖에 없어서 해지도 못시키고 즉시발급 된다고 해서 왔는데 안 된다고 해서 결국 명단만 적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롯데카드센터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으려는 고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KB국민카드 전담점포에도 문의한 결과 “카드 재고 물량이 카드 종류별로 다르기 때문에 바로 발급이 이뤄지지 않는 카드도 있다"며 "방문에 앞서 먼저 재고를 확인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KB국민카드가 하루 최대 10만장 밖에 만들 수 없다"며 "공(空)카드(새 카드 제작에 필요한 빈 카드) 물량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즉시 발급이 가능하다고 하면 누구나 다 즉시발급을 원할 것이다”라며 “카드 재고도 부족한 상황에서 즉시발급이 가능하다고 알리면 일부러 왔다가 헛걸음하는 고객들만 늘어날 것"이라고 털어놨다.

유출사고 발생 이후 금융당국의 설익은 대책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긴급 ‘금융회사 고객정보보호 정상화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이날 밤부터 각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정보유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여론이 악화되고 파문이 확산되자 당초 20일부터 홈페이지를 가동하려던 계획을 긴급하게 앞당긴 것이다. 카드사로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 당시 한 카드사 관계자는 “17일은 어려울 것 같고 잘 되는지 테스트 작업을 거친 뒤에 빠르면 20일쯤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채근에 각 카드사들은 이날밤부터 다음날 새벽에 걸쳐 유출여부를 조회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테스트 단계의 홈페이지를 가동하다 보니 조회단계에서 개인정보가 다시 유출되는가 하면 서버가 마비되는 등 갖가지 문제점이 뒤따랐다.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조급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카드사들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응을 하고 싶어도 지금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대처를 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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