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乙법의 효율성 '공정위'에 달려

신석훈의 단단한 쓴소리

시장에서의 '갑질'을 철저히 막기 위해 강화된 하도급법이라는 무기 때문에 소비자를 위한 정상적인 갑의 전투력이 위축되고 을의 전투력마저 약화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제는 하도급법과 유사한 형태의 강력한 '갑을관계법'들이 국회에서 계속 제정되고 있다는 거다.

시가전이 발생했다. 우군과 적군, 그리고 주민들이 뒤섞여 있다. 이 시가전에서 적군을 사살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은 두가지다. 첫째는 기관총 난사다. 손쉽게 적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상당수의 우군과 주민이 희생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스나이퍼(저격수)들을 빌딩에 배치해 적군을 정확히 저격하는 것이다. 이 전략을 쓰면 일정수의 적군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우군과 주민의 희생은 거의 없다.

둘 중 어느 전략이 바람직할까. 시가전 전술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기업, 불공정행위를 하는 기업, 소비자 등이 뒤섞여 있는 시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기업간 거래에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갑甲의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공정위의 역할이다. 을乙에게 피해를 주는 갑의 불공정 행위를 규율하는 것은 민법(계약법)에 근거한 법원의 역할이다.


소비자와 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갑의 행위는 규제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는 일명 '갑을 관계법'이라고 불리는 하도급법ㆍ가맹사업법ㆍ대형유통업법ㆍ대리점법 등을 통해 공정위가 이런 행위들까지 규제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공정위는 기업간 거래행위가 민법(계약법)상 정당하더라도 규제할 수 있다. 소비자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고 민법(계약법)적으로도 정당한 행위라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규제명분을 굳이 찾는다면 을의 보호다. 문제가 있다. 갑의 행위가 진짜 부당한지를 입증해 규제하는 게 아니다 보니 과잉규제 논란이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외관상 부당해 보이지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상적인 기업행위는 많다. 물론 이렇게 해서라도 을이 확실히 보호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대표적 갑을관계법인 하도급법 개정이 그렇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갑이 납품단가를 인하하면 외형적으로는 불공정해 보인다. 이런 행위에 대해 과징금과 형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청구까지 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질 좋고 저렴한 물건을 제공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갑의 정상적인 납품단가 인하조차도 자칫 부당한 행위로 낙인찍힐 위험이 커진 것이다. 대기업들이 최근 하도급업체의 수를 줄이는 것도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수많은 하도급업체들 중 한곳이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여부를 떠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소송에 휩싸이기 전에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주요 협력업체만 남겨두고 나머지 협력업체와의 거래는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좋은 취지의 정책 때문에 오히려 중소업체의 거래기회 자체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시장에서의 '갑질'을 철저히 막기 위해 강화된 하도급법이라는 무기 때문에 소비자를 위한 정상적인 갑의 전투력이 위축되고 을의 전투력마저 약화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제는 하도급법과 유사한 형태의 강력한 '갑을관계법'들이 국회에서 계속 제정되고 있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위가 이 무기들을 적극 사용한다면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적군을 모두 사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당수의 우군과 주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는 요란한 '람보'보다 적군만 정확히 저격하고 묵묵히 돌아서는 '스나이퍼'가 더 멋지지 않을까. 외형적으로 근육을 키워 '람보'가 되는 것보다 내면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키워 '스나이퍼'가 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돼야만 한다. 우리나라 공정위는 그럴 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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