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반군 편으로 나뉜 각국은 회의 시작부터 기존의 입장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아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유엔이 주최한 이 회담에는 39개국의 외무장관과 4개 국제기구가 참여해 2012년 6월 1차 제네바 회담에서 합의한 과도정부 수립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 문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이 기회를 잃는다면 시리아에서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 유혈사태를 끝내려면 정치적 해법이 유일하다"며 참가국들에 평화적 해법을 도출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상호 동의'를 전제로 과도정부를 구성한다는 1차 회담 합의문을 두고 반군을 지지하는 미국 등은 알아사드가 배제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는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알아사드 대통령은 '상호 동의' 조건에 맞지 않아 과도정부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된다면서 "알사사드가 다시 권좌에 올라 통치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로 테러리즘 척결을 다뤄야 한다며 알아사드 정권 편을 들었다. 시리아 정부는 모든 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시리아가 국제 테러리즘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세계 각국의 극단주의자들이 모여 시리아를 혼란에 빠트리고 유물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도 알아사드 대통령은 외부 세력의 요청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테러리즘을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리아 정부는 테러리즘과 싸우고 있지만 여기 참가한 일부 국가는 손에 피를 묻히고 나와 있다"며 "서방은 테러와 전쟁을 벌인다고 밝히면서 비밀리에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정부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의 아흐마드 자르바 의장은 정부군이 이란과 헤즈볼라 등의 테러리스트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알아사드 퇴진이 없으면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르바 의장은 "1차 제네바 회담 합의문은 알아사드를 퇴진시키고 그의 범죄를 재판하기로 한 서문"이라며 "알아사드가 권좌를 지키는 한 제네바-2 협상은 진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도 알무알렘 장관을 겨냥해 "이번 회담은 과도정부 수립 방안을 찾는 것이지 근거 없는 테러 주장을 펴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내전 3년 만에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24일부터 제네바 유엔본부로 장소를 옮겨 당사자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양측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여 처음으로 정치적 해법의 논의를 시작했다는 성과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몽트뢰에서 "며칠 만에 의미 있는 돌파구를 찾기를 기대하면 잘못"이라며 "그렇지만 일단 외교적 절차를 시작하면 성과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논의하고 시리아 정부가 동의한 국지적 휴전과 포로교환, 인도주의적 지원 보장 등의 수준에서 합의점은 찾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위스에서 평화회담이 열리는 순간에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이들리브, 알레포, 홈스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계속됐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혔다.
특히 시리아 인구의 10~15%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전날 북부 지역에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고 밝혀 시리아 내분을 공고히 했다.
쿠르드계 뉴스통신사인 프라트는 민주동맹당(PYD)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인 카미실리와 이프린, 코바니 등 3개 지역에 자치주를 수립해 장관 22명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시리아는 '아랍의 봄' 당시인 2011년 3월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확산해 지금까지 13만여명이 숨지고 전체 인구 2천200만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국내외 난민으로 전락했다.